본관은 달성(達城). 자는 공필(公弼). 서명인(徐命仁)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화가 서직수(徐直修)이고, 아버지는 이조참판 서유문(徐有聞)이며, 어머니는 심희영(沈喜永)의 딸이다.
1810년(순조 10) 진사시에 합격하고 1819년 식년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예문관검열(藝文館檢閱)을 뽑는 한림권점(翰林圈點)에 들기도 하였다. 전적(典籍)·지평(持平) 등을 역임하다 1822년 충청암행어사로 선발되어 무너진 기강을 바로 잡았다. 암행어사 직을 수행하던 중 부친상을 당하여 관직에서 물러났다가 복귀하여 이조참판·성균관대사성·예조판서·병조판서·개성유수 등을 두루 역임하였다. 1845년(헌종 11) 모친상을 당하여 관직을 떠났다가 상을 마친 후 복귀하여 병조판서·한성부판윤·사헌부대사헌 등을 역임하였다.
충청암행어사로 갔을 때는 진전(陳田)·군전(軍田) 등의 폐해와 각 역참(驛站)의 병폐를 지적하기도 하였다. 시호는 효정(孝靖)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