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지수

  • 역사
  • 인물
  • 조선 후기
조선 후기에, 대사헌, 이조판서, 영의정 등을 역임한 문신.
이칭
  • 시호문청(文淸)
  • 송옹(松翁), 졸옹(拙翁)
  • 일지(一之)
인물/전통 인물
  • 본관달성(達城)
  • 사망 연도1768년(영조 44)
  • 성별남성
  • 출생 연도1714년(숙종 40)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정옥자 (서울대학교, 한국사)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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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 후기에, 대사헌, 이조판서, 영의정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달성(達城). 자는 일지(一之), 호는 송옹(松翁) 또는 졸옹(拙翁). 병조참의 서문상(徐文尙)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영의정 서종태(徐宗泰)이고, 아버지는 좌의정 서명균(徐命均)이며, 어머니는 청풍김씨(淸風金氏)로 김구(金構)의 딸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733년(영조 9) 진사가 되고, 1740년 증광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이후 양관(兩館: 홍문관과 예문관)의 제학과 대사헌·이조판서 등 청요직을 두루 역임하였다. 1766년에는 영의정에 올라 할아버지 서종태(徐宗泰), 아버지 서명균(徐命均)에 이어 3대째 상신(相臣)이 되었다.

대사헌으로 있을 때 장헌세자(莊獻世子)의 비행을 조작하여 영조에게 허위보고한 김상로(金尙魯)·홍계희(洪啓禧) 일당을 탄핵하였으며, 시강원(侍講院)의 빈객(賓客)으로 장헌세자를 교도하여 그 보호에 힘썼다.

장헌세자가 죽고 그의 아들 정조가 동궁에 있을 때 정경(正卿)의 직위에 있으면서 동궁의 신하로 소속되어 보좌하였으며, 또 왕위에 오르는 데 절대적인 공헌을 하여 뒤에 정조의 추앙을 받았다. 천성이 청렴결백하여 세속과 어울리지 않았으며, 정조 때 청백리로 드러내어 표창되었다. 글씨에도 뛰어나 영유(永柔)의 「제갈량묘악비문천상추배기사비(諸葛亮廟岳飛文天祥追配紀事碑)」와 양주(楊州)의 「풍덕부사서명무갈(豊德府使徐命茂碣)」을 썼다. 시호는 문청(文淸)이다.

참고문헌

  • - 『영조실록(英祖實錄)』

  • - 『국조방목(國朝榜目)』

  • - 『은파산고(恩坡散稿)』

  • - 『대구서씨세보(大丘徐氏世譜)』

  • - 『영의정서지수시상(領議政徐志修諡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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