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후기에, 대사헌, 이조판서, 영의정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대사헌으로 있을 때 장헌세자(莊獻世子)의 비행을 조작하여 영조에게 허위보고한 김상로(金尙魯)·홍계희(洪啓禧) 일당을 탄핵하였으며, 시강원(侍講院)의 빈객(賓客)으로 장헌세자를 교도하여 그 보호에 힘썼다.
장헌세자가 죽고 그의 아들 정조가 동궁에 있을 때 정경(正卿)의 직위에 있으면서 동궁의 신하로 소속되어 보좌하였으며, 또 왕위에 오르는 데 절대적인 공헌을 하여 뒤에 정조의 추앙을 받았다. 천성이 청렴결백하여 세속과 어울리지 않았으며, 정조 때 청백리로 드러내어 표창되었다. 글씨에도 뛰어나 영유(永柔)의 「제갈량묘악비문천상추배기사비(諸葛亮廟岳飛文天祥追配紀事碑)」와 양주(楊州)의 「풍덕부사서명무갈(豊德府使徐命茂碣)」을 썼다. 시호는 문청(文淸)이다.
참고문헌
- 『영조실록(英祖實錄)』
- 『국조방목(國朝榜目)』
- 『은파산고(恩坡散稿)』
- 『대구서씨세보(大丘徐氏世譜)』
- 『영의정서지수시상(領議政徐志修諡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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