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춘보

  • 역사
  • 인물
  • 조선 후기
조선후기 삼도통제사, 총융사, 좌포도대장 등을 역임한 무신.
이칭
  • 시호숙렬(肅烈)
  • 화세(和世)
인물/전통 인물
  • 본관달성(達城)
  • 사망 연도1825년(순조 25)
  • 성별남성
  • 출생 연도1766년(영조 42)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장필기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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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후기 삼도통제사, 총융사, 좌포도대장 등을 역임한 무신.

개설

본관은 달성(達城). 자는 화세(和世). 좌의정 서명균(徐命均)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좌의정 서지수(徐志修)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798년(정조 22) 별군직(別軍職)으로 조정에 들어가 2년 뒤에 무과에 장원으로 급제하여 무겸선전관(武兼宣傳官)이 되었다.

이어 정주목사(定州牧使)·황해병사(黃海兵使)·삼도통제사(三道統制使)·총융사(總戎使)·좌포도대장(左捕盜大將) 등을 역임하였다. 1811년(순조 11)에 홍경래(洪景來)의 난이 일어나자 정주목사로서 출정하였다.

영남지방에 흉년이 들자 위유사(慰諭使)가 되었는데 일찍이 무신으로 위유사가 된 적이 없다고 신하들이 반대하자 승지의 직함을 받아 임명될 정도로 왕의 총애를 받았다.

또 좌포도대장으로 있을 때 포교(捕校)와 원례(院隷)간의 싸움을 두고 원례만 다스렸다는 편파성으로 탄핵되기도 하였다. 하지만, 서북지방의 농민항쟁이 일어났을 때는 대의로써 민을 독려하는 것을 보고는 거병(擧兵)들조차도 일찍이 서춘보가 가산(嘉山)·정주의 수령으로 애민한 이력을 알고서 “어찌 그와 서로 포시(砲矢)를 향하겠는가.”라고 할 정도로 민심을 얻기도 하였다. 좌찬성에 추증되었다.

참고문헌

  • - 『정조실록(正祖實錄)』

  • - 『순조실록(純祖實錄)』

  • - 『철종실록(哲宗實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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