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권 1책. 필사본. 서문과 발문이 없어 편찬 경위를 알 수 없다. 규장각 도서에 있다.
권1에 서(書) 29편, 권2에 서(序) 16편이 실려 있다.
서(書)는 김무택(金茂澤)·황경원(黃景源)과 주고받은 것이 많으며, 그밖에 김순택(金純澤)·이민보(李敏輔)·이사홍(李思弘)·이천보(李天輔)·신소(申韶)·장학성(張學聖) 등 당대 노론 계열의 문신 또는 친척들에게 보낸 것이 있다. 김무택·신소·김순택 등에게 보낸 편지에서는 처사의 입장에서 도(道)를 후세에 전하는 수단으로 문장을 중시, 문(文)은 곧 도이며 문장은 ‘공맹지도(孔孟之道)’에 근본을 두어야 한다고 강조하고, 아울러 노자(老子)·불교 등을 비판하였다.
순정문(醇正文)의 맥을 이은 당대의 문장가로 유명한 황경원에게 보낸 편지에서는 문장은 『시경』과 『서경』 등 육경(六經)에 근본을 두어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이민보에게 보낸 것은 학문에 힘쓸 것을 권면한 내용이고, 장학성에게 보낸 편지는 『서경』 홍범편(洪範篇)에 있는 왕도(王道)에 대해 논한 것이다.
서(序)는 남원현감으로 부임하는 숙부 득일(得一)과 이익보(李益輔), 황해도관찰사 조효승(趙孝承) 등을 송별하며 지은 것, 이민보·석자수(釋子秀) 등의 시문집에 붙인 것 등이다. 이민보의 시집에 붙인 「이백눌시권서(李伯訥詩卷序)」에서는 “시는 뜻에 근본을 두므로 뜻이 바르지 않으면 좋은 시가 될 수 없다”는 시론(詩論)을 펼쳤다.
이 시기 사상계의 주류를 이루던 성리학자들과 달리 도문일치론(道文一致論)의 처지에서 육경에 근본을 둔 고문(古文)을 강조한 저자의 편지는 조선 후기의 사상사를 연구하는 데 도움이 되는 자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