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물이 뽀얗고 맛이 농후하다 하여 설농탕(雪濃湯)이라고도 한다.
설렁탕의 유래에 관하여는 여러 가지 설이 있다. 먼저 설렁탕은 조선시대에 왕이 선농단으로 거동하여 생쌀과 생기장, 소·돼지를 놓고 큰 제전을 올린다.
그런 다음에 친경(親耕 : 임금이 친히 전답을 가는 의식)을 하던 행사를 한다. 행사가 끝나면 미리 준비해둔 가마솥에 쌀과 기장으로 밥을 하고, 소로는 국을 끓여 구경꾼 가운데 60세 이상의 노인을 불러 먹였던 데서 나왔다는 것이다.
『조선요리학(朝鮮料理學)』에서도 세종이 선농단에서 친경을 할 때에 갑자기 심한 비가 내려서 촌보를 옮기지 못할 형편이 되었다. 그리고 배고픔을 못 견디어 친경 때에 쓰던 소를 잡아 맹물에 넣고 끓여서 먹었다. 이것이 설렁탕이 되었다고 그 유래를 설명하고 있다.
또 하나의 설은 몽고의 고기를 맹물에 끓이는 조리법이 우리나라에 들어와 설렁탕이 되었다는 것이다.. 『몽어유해(蒙語類解)』에는 고기 삶은 물인 공탕(空湯)을 몽고어로는 슈루라고 한다고 되어 있고, 『방언집석(方言輯釋)』에서는 공탕을 한나라에서는 콩탕, 청나라에서는 실러, 몽고에서는 슐루라 한다고 하였다. 따라서 이 실러·슐루가 설렁탕이 되었다는 것이다.
설렁탕은 서울의 명물음식으로서 일찍부터 대중음식으로 시판되었다. 설렁탕집에는 항상 2, 3개의 큰 무쇠솥에 설렁탕이 끓고 있었다. 그 옆에는 설렁탕을 골 때에 넣었던 여러 부위의 편육을 부위별로 썰어서 채반에 담아놓았다.
손님이 설렁탕을 청하면 뚝배기에 밥을 담고 뜨거운 국물로 토렴하여 밥을 데운다. 그 다음에 국수 한 사리를 얹고 채반에 놓여 있는 고기를 손님의 요구에 따라 집어넣고 뜨끈뜨끈한 국물을 듬뿍 부어 내주었다.
그러면 곱게 썬 파와 소금·고춧가루·후춧가루 등을 식성에 따라 넣어 먹었다. 지금도 설렁탕은 대중음식으로 애용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