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88년(숙종 14)에 지방유림의 공의로 정가신(鄭可臣)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노안면 금안리에 창건하여 위패를 모셨다.
1693년(숙종 19)에 정식(鄭軾)을 추가배향하고 1723년(경종 3)에 현재의 위치로 이건하였다. 1725년(영조 1)에 신장(申檣), 1756년(영조 32)에 정담(鄭湛)을 추가배향하였다.
선현배향과 지방교육의 일익을 담당하여 오던 중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1868년(고종 5)에 향사(享祀)만 중지되고 건물은 훼철되지 않았으며, 1953년부터 다시 향사를 지내고 있다. 1953년에 정상(鄭詳) · 정여린(鄭如麟) · 정란(鄭瀾)을 추가배향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경내의 건물로는 3칸의 설재사(雪齋祠), 재명문(齊明門), 4칸의 영모재(永慕齋), 정문, 4칸의 고사(雇舍), 3칸의 창고 등이 있다. 사우(祠宇)인 설재사에는 정가신을 주벽(主壁)으로 하여 좌우에 정식 · 신장 · 정담 · 정상 · 정여린 · 정란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다.
강당인 영모재는 중앙의 마루와 양쪽 협실로 되어 있는데, 원내의 여러 행사와 유림의 회합 및 학문 강론의 장소로 사용되고 있다. 이 서원은 1984년 전라남도 문화재자료(현, 문화유산자료)로 지정되었으며, 매년 9월에 향사를 지내고 있다. 제품(祭品)은 3변(邊)3두(豆)이며, 유물로는 금안장(金鞍)이 소장되어 있다. 재산으로는 전답 2,000여 평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