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창녕(昌寧). 자는 정중(正仲). 성효연(成孝淵)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성완(成玩) 이고, 아버지는 종부시정(宗簿寺正) 성희주(成希周)이며, 어머니는 채자심(蔡子深)의 딸이다.
나이 10여 세에 이미 경사(經史)에 통달하였다. 그러나, 20세 때 부친상을 당하여 예에 지나칠 만큼 극진히 상사(喪事)를 돌보았으므로 학업은 거의 중단하였고, 따라서 과거에 늦게야 응시하게 되었다. 1546년(명종 1) 사마시를 거쳐 1561년 식년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으나, 또 상을 당하여 3년을 지내게 되니 이미 나이는 50세가 되었다.
이 때 비로소 승문원에 등용되고, 전적·공조좌랑을 거쳐 어천도찰방(魚川道察訪)으로 나갔다가 병으로 돌아왔다. 그 뒤 여러 벼슬을 역임한 뒤 첨지중추부사에 이르고, 1590년(선조 23) 강원도관찰사에 임명되었으나 부임 전에 병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