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창녕(昌寧). 직제학 성사재(成思齋)의 6대손이며, 아버지는 성흔(成忻)이다.
음서로 진주판관에 임용되었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초유사(招諭使) 김성일(金誠一)에 의하여 발탁되어 군무를 맡아 성벽을 개수하고 무기를 수선하는 등 전비를 갖추었다.
한편으로 격문을 붙여 충의지사를 부르니 피난 갔던 백성들이 돌아와 얼마간 군세가 회복되기도 하였다. 1593년(선조 26) 6월 하순에 일어난 제2차 진주성 전투에서 분전하던 중 전사하였다. 병조판서에 추증되고, 진주의 충렬사(忠烈祠)와 창녕의 물계서원(勿溪書院)에 제향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