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길시에서 동쪽으로 10km 지점의 장안진(長安鎭) 마반촌(磨盤村) 산성리둔(山城里屯) 서쪽의 성자산에 위치하고 있다. 성자산의 동·남·서의 3면을 감싸 흐르는 포이합통하(布爾合通河)가 산성의 동남 성벽 아래에서 해란강(海蘭江)과 합류하고 있다.
산성은 해발 390m의 주봉을 비롯한 4개의 봉우리를 연결하여 구축되었는데, 동·남쪽이 높고 험준하며 서·북쪽이 완만하다. 성안에는 2개의 계곡을 끼고 있으며, 산봉우리와 계곡 사이에 세 부분의 대지가 조성되어 있다.
성벽은 돌로 쌓았는데, 현재 남아 있는 것은 높이 1∼3m, 너비 5∼7m, 전체 길이가 4,454m인 대형 산성으로 평면은 대략 말발굽 형태이다.
성문은 동서남북에 네 곳이 남아 있는데, 북문이 정문이다. 서문·동문·북문은 모두 옹성(甕城)의 구조를 하고 있는데, 북문은 안으로 들어온 옹문 구조임에 반하여, 서문은 성문 바깥으로 八자형의 방어성벽을 돌출시켜 쌓아 이중의 옹성 구조를 갖추고 있다.
서문의 통로에는 4각의 초석과 기와편이 흩어져 있어 각루(角樓 : 성의 굴곡부·우각부·돌출부 등의 요소에 지은 다락집)가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성안의 중앙 경사면에는 계단상의 대지가 여러 곳 조성되어 있는데, 각 단은 너비 10m, 길이 17m의 장방형으로, 초석이 배열되어 있고, 청회색의 포문(布文) 와당과 토기편들이 흩어져 있어 커다란 건물지의 유적임을 알 수 있다.
여기서 동남으로 200m 지점에는 고구려시대의 것으로 보이는 적색의 격자문(格子文)과 승문(繩文)의 기와편이 다량으로 흩어져 있다.
이 밖에도 성안에는 다수의 주거지 유적도 발견되는데, 특히 성의 서·서북에는 주거지가 밀집되어 있으며, 여기에는 요(遼)·금(金)대의 기와와 토기편이 흩어져 있다. 북문에서 성안 계곡으로 이어지는 동쪽 경사면에는 흙으로 쌓은 점장대(點將臺)가 구축되어 있다.
성안에서 출토되는 유물은 요·금 및 동하국(東夏國)의 것이 많지만, 고구려나 발해시대의 기와와 토기, 철제 도끼도 출토되고 있어 이 산성이 고구려시대에 처음 건립되어 발해를 거쳐 청대에 이르기까지 지속적으로 이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는 성자산산성이 역사적으로 연변(延邊) 지역에서 가장 중요한 산성으로 기능하였음을 보여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