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건연대 및 창건자는 미상이나 『신증동국여지승람』에 기록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고려 말 이전에 창건된 것으로 추정된다. 임진왜란 이후에는 한때 폐사가 되었다가 영조 때에 중창하였으며, 1910년부터 빈 절로 남아 있다가 폐허화되었다.
이 절이 도괴되자 법당의 부처님은 음성군 가섭사(迦葉寺)의 승려가 가져갔으며, 절의 재목은 음성군수가 운반 해다가 관아(官衙)를 건축하였다고 한다. 현존하는 유물로는 부도 2기와 동불상(銅佛像) 등이 있다. 부도는 절터 남쪽 언덕 위에 있는데, 1기는 기단석 위에 4각형으로 안치되어 있고, 관석(冠石)을 올려놓았으며, 높이는 110㎝이다.
또 1기는 원형 복련좌대 위에 놓여진 원구형 부도이나 완전한 모습이 아니다. 또, 동불상은 1968년 4월에 밭을 경작하다가 발견한 것으로 높이는 1m 정도이며, 조각수법이 단조로운 것으로 보아 조선시대의 작품으로 추정된다. 그밖에도 절터에서는 토불(土佛) 10여 점이 발굴되었으며, 지금도 막새기와와 평와 등이 산재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