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하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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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선 후기
조선시대 갑산부사, 함경남도우후, 길주목사 등을 역임한 무신.
이칭
  • 이술(而述)
  • 이칭창흥군(昌興君)
인물/전통 인물
  • 본관창녕(昌寧)
  • 사망 연도1645년(인조 23)
  • 성별남성
  • 주요 관직갑산부사|함경남도우후|길주목사
  • 출생 연도1573년(선조 6)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정하명 (육군사관학교, 한국사)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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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시대 갑산부사, 함경남도우후, 길주목사 등을 역임한 무신.

개설

본관은 창녕(昌寧). 자는 이술(而述). 사직서영(社稷署令) 성예원(成禮元)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참판 성수익(成壽益)이고, 아버지는 성진선(成晉善)이고, 어머니는 윤문로(尹文老)의 딸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여러 번 문과에 실패한 뒤 1603년(선조 36) 무과에 급제하였다. 대정현감(大靜縣監)을 지냈으며, 그 뒤 형조좌랑·군기시첨정(軍器寺僉正)·훈련원부정(訓練院副正)·갑산부사·함경남도우후(咸鏡南道虞候)·길주목사 등을 역임하였고, 강계부사로 있으면서는 선정을 베풀어 이름을 떨쳤다. 1636년(인조 14) 청백리에 뽑히고 창흥군(昌興君)에 봉해졌다.

오위도총부부총관(五衛都摠部副摠管)이 되었다. 이 해 12월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전라우도수군절도사로서 수군을 이끌고 강화도로 갔으나 이미 강화도가 함락된 뒤였다. 이 때문에 고의로 출동을 늦추었다는 죄로 탄핵을 받아 제주목사로 좌천되었다.

그 뒤 함경북도병마절도사가 되어 북방의 방어에 공헌하였다. 1645년 경성 임지에서 죽자 조정에서 병조판서로 추증하였다. 함경북도 경성의 청덕사(淸德祠)에 제향되었다. 성품이 인후하고, 효성과 우애가 지극하였으며, 관직생활에 충직하고 청렴하여 칭송을 받았다. 송시열(宋時烈)이 신도비문을 지었다.

참고문헌

  • - 『인조실록(仁祖實錄)』

  • - 『송자대전(宋子大全)』

  • - 『국조인물고(國朝人物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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