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창녕(昌寧). 자는 계휘(季輝), 호는 유촌(柳村). 대사간 성이문(成以文)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관찰사 성신구(成信耉)이고, 성후주(成後周)이며, 어머니는 사천목씨(泗川睦氏)로 예빈시정(禮賓寺正) 목기선(睦嗜善)의 딸이다.
음직(蔭職)으로 통덕랑(通德郎)이 되었다. 1690년(숙종 16) 식년 문과에 을과로 급제, 중앙관직으로는 병조·예조·형조의 원외랑, 국자감사예·공조참의·오위도총부도총관을 역임하였다. 이어 외직으로는 단천(端川)·해미(海美)·흥해(興海)·청송(靑松)의 현감과 호서·호남의 관찰사를 지냈다.
1727년(영조 5)에 공조참의가 되었다. 관직생활을 하면서 위선사업(爲先事業)에 주력하여 『성시중효행록(成侍中孝行錄)』과 『창녕성씨족보(昌寧成氏族譜)』를 편찬하였다.
『성시중효행록(成侍中孝行錄)』은 2권 1책이다. 제1권에는 시중 성송국(成松國)의 효행 사실을, 제2권에는 시중의 자손인 성삼문(成三問) 등 7인의 행장(行狀)과 서원제향 등의 사실을 기재하였다.
『창녕성씨족보(昌寧成氏族譜)』는 종전의 족보를 보완하여 성씨의 노상(路上)·노하(路下) 양파를 합보(合譜)한 것으로 1709년에 중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