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경본풀이」는 제주도 굿에서 풍농을 관장하는 신격인 세경의 내력을 풀이할 때 부르는 서사무가이다. 다양한 계열의 서사적 원천을 활용한, 길고 풍부한 서사를 갖추고 있는 장편 무속 서사시이기도 하다. 인간 소녀 자청비가 온갖 시련을 이겨내고 천상 세계의 문 도령과 혼인하기에 이르는데, 이에 그치지 않고 스스로 지상에 내려와 농경의 풍요를 담당하는 신격으로 좌정한다는 내용이다. 풍농의 신화적인 원리, 주체적 여성 문화 영웅의 전형 등을 확인할 수 있다.
농경의 풍요를 기원할 때 구송하는 본풀이이다. 「잠수굿」 등에서 바다의 풍요를 기원할 때에는 「요왕세경본풀이」로 구연되기도 한다. 「세경본풀이」를 중심으로 하는 제차를 가리키는 이름이기도 하다.
김진국과 조진국 부부가 혼인 후 30년이 넘도록 자식이 없다가 불공을 올려 딸을 얻었다. '자청(自請)하여 낳은 아이'여서 '자청비'라 이름지었다. 귀하게 자라던 자청비는 어느 날 하녀를 따라 빨래터에 나갔다가 공부하러 길을 나선 천상국의 문 도령을 만나게 되고, 남장을 하여 문 도령과 동행한다. 함께 글공부하던 중에 문 도령이 혼인을 위해 집으로 돌아가게 되자 자청비도 함께 길을 나서고, 처음 만났던 빨래터에서 자청비는 문 도령에게 자신의 정체를 밝힌다. 서로의 사랑을 확인한 후, 문 도령은 돌아오겠다는 약속을 하고 홀로 떠난다. 시간이 흘러도 문 도령은 돌아올 줄 모르고, 문 도령을 기다리던 자청비는 머슴인 정수남의 꼬임에 빠져 문 도령을 찾아 숲 속에 들어갔다가 정수남에게 겁탈을 당할 위기에 처한다. 자청비는 기지를 발휘하여 정수남을 죽이고 홀로 집으로 돌아오지만, 머슴을 살려내라는 부모의 호통에 오히려 집에 발을 붙이지 못하게 되고 만다. 남장을 하고 서천 꽃밭에 간 자청비는 서천 꽃밭의 문제를 해결하여 꽃 감관의 사위가 되고, 이후 환생꽃을 손에 넣고 돌아와 정수남을 살려낸다. 그러나 이 일을 빌미로 자청비는 또 집에서 쫓겨나고 마는데, 천신만고 끝에 천상에 올라가 문 도령의 부모를 만나고 어려운 시험들을 통과한 다음 마침내 문 도령과 부부의 연을 맺는다. 한편 자청비는 자신과 부부의 연을 맺었던 서천 꽃밭 꽃 감관의 딸에게 남편 문 도령을 보낸다. 한 달에 보름만 살고 나머지 보름은 자신과 함께 지내기로 했으나, 문 도령은 돌아올 줄 모른다. 자청비는 옥황 문선왕에게 사정을 아뢰고 지상으로 돌아온다. 자청비는 천상의 오곡과 메밀 씨앗을 가지고 돌아와 지상의 풍농을 관장하는 신, 즉 세경이 되고, 다시 만난 정수남에게는 마불림제를 받는 목축의 신 자리를 마련해 준다.
자청비를 주인공으로 하는 신화인 동시에, 자청비와 함께 세경으로 자리잡은 문 도령과 정수남의 내력담이기도 하다. 천상 존재 문 도령, 인간 자청비, 목동 정수남의 관계를 통해 풍농 실현의 원리와 규범을 풀어낸 신화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