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주 ()

목차
관련 정보
안동소주 / 누룩 반죽
안동소주 / 누룩 반죽
식생활
물품
곡류를 발효시켜 증류한 술.
•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목차
정의
곡류를 발효시켜 증류한 술.
내용

상업적으로는 곡류나 감자류 등을 원료로 하여 주정발효를 거쳐 숙성된 술덧을 증류하여 만들거나 무수주정을 물로 희석하고 설탕·포도당·구연산 등을 첨가하여 만든다.

소주는 술덧을 증류하여 이슬처럼 받아내는 술이라 하여 노주(露酒)라고도 하고, 화주(火酒) 또는 한주(汗酒)·기주(氣酒)라고도 한다. 또한 아라키주[亞刺吉酒]라고도 하였는데 이는 증류주(蒸溜酒)의 발생과 관련되어 붙여진 이름이다.

과실이나 곡물을 원료로 하여 술을 빚은 것은 오래된 일이지만, 이것을 다시 증류하여 만든 소주는 인간의 지혜가 상당히 진보된 후대의 산물이다. 술의 증류법은 중세기 페르시아에서 발달되었다고 하며, 아라비아에서 원나라·만주를 거쳐 우리나라에 전해진 것으로 추측된다.

이것은 소주를 아라비아어로 아락(arag)이라 하고, 만주어로는 알키라고 하며, 우리나라 평안북도지방에서는 아랑주, 개성지방에서는 아락주라고 하는 것으로 보아 알 수 있다.

소주가 우리나라에 도입된 시기는 고려 충렬왕 때로 몽고군을 통해서 도입되었고, 그뒤 이를 즐기는 무리가 생겨서 소주도(燒酒徒)라고 불리기도 하였다. 특히 몽고군의 주둔지였던 안동과 개성·제주도는 제조법이 발달하였으며, 최근까지도 그 전통이 유지되어 유명하였다.

조선시대에는 더욱 유행되어 이에 관한 기록이 많이 보이고 있다. ≪단종실록≫에는 문종이 죽은 뒤 단종이 상제노릇을 하느라고 허약해져서 대신들이 소주를 마시게 하여 기운을 차리게 하였다는 기록이 보이고 있고, ≪중종실록≫에는 소주를 마시는 사람이 많아져서 쌀의 소비가 늘고 있으며, 소주로 인한 피해가 크다는 기록이 보이고 있다.

1490년(성종 21)에 사간 조효동(趙孝同)은 “세종 때는 사대부 집에서 소주를 사용하는 일이 매우 드물었는데, 요즈음은 보통의 연회 때도 소주를 사용하고 있어 비용이 막대하게 드니 금지하도록 하는 것이 좋겠다.”고 진언하였다.

≪지봉유설≫에서는 근세에 와서 사대부들이 호사스러워져서 소주를 많이 마셔 취해야만 그만두고 있으며, 이 때문에 갑자기 죽는 사람도 많다고 하였다. 이와 같이 처음에는 약용으로 마시거나 왕이나 사대부들이 마셨던 술이었는데, 점차 일반서민에게도 보급되어 각 가정에서도 많이 빚어먹게 되었다.

그 뒤 1919년에 평양에 알콜식 기계소주공장이 세워지고 이어 인천·부산에도 건설되어 재래식의 누룩을 이용한 소주는 흑국소주로 바뀌고, 1952년부터는 값싼 당밀을 수입하여 만들게 되었다.

1965년 정부의 식량정책의 일환으로 곡류의 사용이 금지됨에 따라 우리 고유의 풍미와 정성어린 증류식 순곡주는 자취를 감추고 고구마·당밀·타피오카 등을 원료로 하여 만든 주정을 희석한 희석식 소주로 바뀌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만드는 법은 증류식 소주의 경우 일반적으로는 쌀 한말을 잘 씻어 지에밥을 쪄서 물 두말을 부어 식힌 다음 누룩 다섯되를 섞어 빚는다. 이때 물은 끓여서 식힌 물을 사용한다.

7일이 지난 뒤 소주를 고는데, 솥에 물 두 사발을 먼저 끓인 뒤에 술 세 사발을 그 물에 부어 고루고루 젓고 불을 때어 증류시켜 이슬로 받아낸다. 서울지방에서는 항아리에 고두밥과 물·누룩가루를 넣고 혼합한 다음 매일 두번씩 저어주면서 3주일쯤 지나서 술이 익으면 뚜껑을 덮고 흙으로 밀봉해두었다가 증류하여 소주를 얻었다.

평양지방에서는 소주의 원료가 대개 누룩과 수수였는데 지역에 따라서는 찹쌀·멥쌀·좁쌀·옥수수 등을 쓰기도 하였다. 먼저 항아리에 누룩과 물을 섞어넣고 수수를 쪄서 넣은 다음 2, 3일간 발효시키고 다시 쌀을 쪄서 첨가한 다음에 식힌 찹쌀죽을 첨가하여 매일 두번씩 저으면서 25∼40일간 발효시켜 얻은 술밑을 증류하여 소주를 얻었다.

함흥지방에서는 쌀과 영흥에서 만든 누룩으로 술밑을 만드는데, 서울이나 평양 등지에 비하여 누룩의 사용량이 적고 물을 많이 넣으며 비교적 단시일에 익혀서 증류하여 소주를 얻었다.

소주는 불을 때는 화력에 따라 질이 결정되는데, 불이 세면 소주가 많이 나오는 반면 냇내가 나고, 불이 약하면 소주가 덜 난다. 양푼의 물을 자주 갈아주면서 고면 좋은 술을 얻을 수 있다. 땔감은 뽕나무나 밤나무가 적당하다고 한다.

증류할 때 초기에는 솥을 사용하였으나 조선시대에 증류법이 발달하여 흙이나 구리 또는 쇠로 만든 소주고리를 사용하게 되었다. 그뒤 1910년경부터 재래식 시루 대신에 청주제조용 시루를 사용하고, 냉각수는 자연유수방식을 쓰고, 고리의 소주받이에는 냉각사관을 달았다.

누룩은 분말형태를 쓰고, 연료는 장작을 사용하였다. 1920년경부터는 흑국을 사용하고, 단식에서 연속식 증류기를 사용하였다. 희석식 소주의 경우 주정은 백미를 제외한 녹말을 함유하는 잡곡류나 감자류·당밀 또는 과실을 제외한 당분을 함유한 사탕수수 등을 원료로 하여, 발효법·국법·액체국법·아밀로법 등으로 발효시켜 알콜 85도 이상으로 증류한 것으로, 이것에 물을 부어 농도를 낮춘 다음 첨가물로 설탕·포도당·구연산·사카린·아미노산·솔비톨·무기염류 등을 섞는데, 이는 각 제조업자의 조미공정에 따라 맛이 쓰기도 하고 단맛이 나기도 한다.

증류식 소주는 사용하는 원료에 따라 찹쌀소주·멥쌀소주·수수소주·옥수수소주·보리소주·밀소주 등이 있고, 첨가하는 약재에 따라 감홍로·이강고·죽력고·구기주·매실주·우담소주 등이 있다. 또한 향토적 특성에 따라 안동소주·개성소주·진도홍주·제주민속주 등으로 불리고 있다.

희석식 소주는 어느 원료를 사용하거나 증류, 정제하기 때문에 주정함량만 다를 뿐 특징이 없다. ≪지봉유설≫에서는 소주는 약으로 쓰기 때문에 많이 마시지 않고 작은 잔에 마셨고, 따라서 작은 잔을 소주잔이라고 하게 되었다고 하였다.

가정에서 소주를 만들었던 시대에는 지방에 따라 소주를 마시는 시기가 달랐는데, 서울지방에서는 대개 5월부터 10월까지였고, 남부지방은 여름철에만 마셨으며, 북부지방에서는 4계절 모두 소주가 술의 주종을 이루고 있었다. 소주는 다른 술에 비하여 비교적 순수하여 장기 저장시 상할 염려가 없으므로 지금도 대중주로서 널리 이용되고 있다.

참고문헌

『진로오십년사』(장지현, 주식회사진로, 1975)
『대한주정협회삼십년사』(안태갑, 대한주정협회, 1982)
『한국식품사회사』(이성우, 교문사, 1984)
• 항목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단,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미디어ID
저작권
촬영지
주제어
사진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