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높이 394㎝, 비신 높이 253㎝ · 너비 120㎝. 1982년 전라남도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이 비는 귀부(龜趺) · 비신(碑身) · 이수(螭首)를 갖춘 전형석인 비석 형태이다. 귀부는 대좌가 땅에 묻혀 보이지 않고 귀갑(龜甲) 윗면만 노출되어 있다.
귀두(龜頭)는 용두(龍頭)처럼 변하여 정면을 응시하고 있으며, 두 눈은 튀어나와 있다. 다문 입에는 여의주가 없으며 귀두 뒤쪽에 특이하게 두 귀가 솟아나 있다. 목은 짧으며 앞에 비늘이 양각되어 있고, 등에는 귀갑문이 육각으로 시문되어 있으나 형식화된 느낌이 많다.
귀부 중앙에는 장방형의 비좌를 설치하여 비신을 받고 있는데, 판석형의 비신에는 전후 면에 비문이 음각되어 있다. 이수에는 두 마리의 용이 얽혀 있으며 아래쪽에 와문(渦文 : 소용돌이 무늬)이 보인다.
비신 앞면 상단에 전서(篆書)로 ‘普照國師碑銘(보조국사비명)’이라고 제액하였다. 비제는 해서(楷書)로 ‘海東朝鮮國湖南順天府曹溪山松廣寺贈諡佛日普照國師碑銘幷序(해동조선국호남순천부조계산송광사증시불일보조국사비명병서)’라 하였다.
원비는 국사가 열반한 1210년(희종 6)에 고려시대의 문신인 김군수(金君綏)가 비문을 지었고 유신(柳伸)이 써서 보창(寶昌)이 1211년에 새겨 1213년(강종 2)에 세워졌다. 그러나 임진왜란으로 비가 무너지고 귀부만 남아 현재의 비는 중건된 것이다. 비의 뒷면 비문의 끝에 '崇禎紀元戊辰後五十一年戊午十月日重建沙門雪明(숭정기원무진후51년무오10월일중건사문설명)’이라 하여 이 비를 1678년(숙종 4) 10월에 중건했음을 밝히고 있다. 또 뒷면에는 '비음(碑陰)'을 적고 그 뒤에 이 비를 새로 중건하게 된 배경을 적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