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운(姜橒: 1773~1834)의 본관은 진주(晉州)이며, 자는 경하(擎厦), 호는 송서(松西)이다. 병자호란 때 강화도에서 순국한 강위빙(姜渭聘)의 후손으로, 증조부는 강중길(姜重吉), 조부는 강일신(姜一臣)이다. 영남 남인 출신의 학자로, 전적, 지평, 이조좌랑 등을 역임하였다.
10권 5책의 목활자본이다. 고려대학교 도서관, 국립중앙도서관 등에 있다.
저자의 손자 강한규(姜漢奎) · 강하규(姜夏奎)와 종손(從孫) 강명규(姜命奎) 등이 1849년에 1차 정리하였고, 증손 강용(姜鎔)이 증보하여 5책으로 재편하였으며, 강용의 재편집본을 저자의 5세손인 강수원(姜壽元)이 1926년 5월에 영주에서 활자로 인행하였다.
권1·2에 시 258수, 권3~5에 소(疏) 4편, 서(書) 59편, 권6·7에 잡저 4편, 서(序) 4편, 기(記) 6편, 발(跋) 2편, 설(說) 3편, 고유문 2편, 상량문 2편, 제문 12편, 권8·9에 제문 4편, 애사 3편, 묘갈명 2편, 가장 1편, 유사 1편, 전(傳) 1편, 부록으로 만사 16수, 제문 8편, 권10은 부록으로 묘지명 · 행장 등이 수록되어 있다.
권1~2의 시는 시체(詩體) 구분이 없고, 저작 연대도 뒤섞여 있다. 다만 영양의 일월산을 오르면서 남긴 일월산행잡영(日月山行雜詠), 소백산에 오르며 지은 운원잡영(雲院雜詠), 금강산을 유람하며 읊은 금강잡영(金剛雜詠)과 같은 기행시편들은 편목을 세워 정리하였다.
소의 「육조소(六條疏)」는 당시에 대리청정(代理聽政)하던 사도세자에게 올린 것이다. 왕도 정치의 귀감인 홍범(洪範)의 구경(九經) 가운데에서 시무(時務)에 긴요하지 않은 내백공(來百工) · 유원인(柔遠人) · 회제후(懷諸侯)의 세 조목을 뺀 나머지 여섯 조목, 곧 수신(修身) · 존현(尊賢) · 친친(親親) · 경대신(敬大臣) · 체군신(體君臣) 등에 대한 요점을 들어 요순과 같은 임금이 되게 하려는 뜻에서 진언한 것이다. 현재 수신 · 존현 · 친친의 세 조목만 남아 있고 나머지는 유실되었다.
서(書)에는 사서삼경에 대한 문답과 『의례(儀禮)』에 대한 논변이 많다. 특히 『대학』의 문목에 답한 별지는 삼강령(三綱領) · 팔조목(八條目) · 명덕(明德)에 대해 조목조목 상세히 응답한 것으로, 후학의 『대학』 공부에 도움이 되는 자료이다.
잡저의 「독근사록의의(讀近思錄疑義)」는 자신이 『근사록』을 공부하며 얻은 바를 적은 글이다. 원문이나 주를 해당 부분만 절취하여 싣고 그 아래에 깨우친 것을 달아놓아 후인의 공부에 도움이 되도록 하였다. 「심의제도(深衣制度)」에서는 심의를 만드는 제도에 이설이 많아 통일되지 않은 점을 고려하여, 이에 대한 고금의 제설을 원용해 자세히 설명하고 도(圖)를 곁들여 보는 사람들의 이해에 도움이 되도록 하였다.
이 밖에 「존양재기(存養齋記)」 · 「창주정사유학자서시제군(滄洲精舍諭學者書示諸君)」 등은 유학자로서의 학문하는 방법과 수신하는 도를 말했고, 「정자생지위성설(程子生之謂性說)」은 ‘생지위성(生之謂性)’에 대한 맹자 · 정자(程子)와 고자(告子)의 차이를 밝힌 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