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정동 석불 입상 ( )

목차
관련 정보
송정동 석불입상
송정동 석불입상
조각
유물
문화재
대구광역시 동구 송정동에 있는 통일신라시대의 불상.
시도지정문화재
지정 명칭
송정동석불입상(松亭洞石佛立像)
지정기관
대구광역시
종목
대구광역시 시도유형문화유산(1988년 05월 30일 지정)
소재지
대구 동구 송정동 363번지
목차
정의
대구광역시 동구 송정동에 있는 통일신라시대의 불상.
내용

1988년 대구광역시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불상이 자리한 산 주변 일대는 절이 있었던 곳으로 추정되나 현재 전각은 하나도 없다.

이 불상은 거대한 판상(板狀 : 널빤지처럼 생긴 모양)의 화강암에 고부조(高浮彫 : 모양이나 형상을 나타낸 살이 매우 두껍게 드러나게 한 돋을새김)한 것이다. 현재 광배는 파손이 너무 심해 남아 있는 부분이 거의 없으며, 불상도 훼손과 마모가 심한 상태이다.

전하는 말에 의하면 세 동강이 난 불상을 일제 강점기에 보수하여 현재의 위치에 세웠다 한다. 지금도 목과 무릎 아래에 접합한 흔적이 남아 있다.

불상의 양옆과 뒤쪽으로는 석재를 쌓아 올려 일종의 감실처럼 꾸며 놓았다. 그 둘레에는 철책을 설치해 놓았다. 불단이 마련된 지면(地面)도 큰 석재를 쌓아 올려 다듬었다. 이 석재들 사이에 불상의 무릎 이하가 매몰되어 있어, 현재 대좌의 유무는 확인할 수 없다.

머리는 나발(螺髮 : 부처의 머리카락. 소라 껍데기처럼 틀어 말린 모양)이고 크고 뚜렷한 육계(肉髻 : 부처의 정수리에 있는 뼈가 솟아 저절로 상투 모양이 된 것)와 긴 귀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원만하고 온화한 얼굴을 하고 있다. 미간엔 백호(白毫 : 부처의 두 눈썹 사이에 있는 희고 빛나는 가는 터럭)를 표시했는데 무엇인가를 삽입했던 흔적이 남아 있다.

목에는 삼도(三道)가 있으며 장대한 어깨는 부드럽고 굴곡 있게 묘사했다. 가슴은 풍만하고 당당하다. 법의는 통견의(通肩衣 : 어깨에 걸쳐진 옷)이며, 몸에 밀착되게 표현되어서 신체의 양감이 잘 드러난다. 옷주름은 배 앞으로 층단을 이루며 내려왔고, 양다리로는 타원동심원을 이루며 흘러내리고 있다.

두 손은 마모가 심해 확실하지는 않지만 가슴 앞에서 모은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지권인(智拳印 : 왼손 집게손가락을 뻗치어 세우고 오른손으로 그 첫째 마디를 쥔 손 모양)을 표현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이러한 지권인을 결한 통일신라시대의 석조비로자나불입상으로는 경주박물관 소장의 9세기 초의 작품으로 보이는 영양 출토 석조비로자나불입상과가 있다. 또한 9세기 전반기의 작품으로 알려진 봉화군 동면리의 마애비로자나불입상 등을 들 수 있다. 송정동 석불입상은 앞의 두 불상보다는 양식적으로 후대의 작품이라 생각된다.

이 불상은 조각 수법이 풍만하면서도 사실적이고, 신체가 균형 잡혀 있어서 통일신라시대의 작품으로 생각된다. 이러한 기법은 고려시대의 작품으로 추정되는 군위 위성동 약사여래입상의 듬직하고 묵중한 신체 표현으로 이어진다고 볼 수 있다.

참고문헌

『한국조각사』(문명대, 열화당, 1980)
『원융(圓融)과 조화』(강우방, 열화당, 1990)
관련 미디어 (1)
• 본 항목의 내용은 관계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단,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미디어ID
저작권
촬영지
주제어
사진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