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인 스가와라(菅原道眞)가 쓴 ≪유취국사 類聚國史≫ 수속부(殊俗部)에 수록된 기사에 의하면, 발해국에선 큰 고을의 장은 도독(都督)·자사(刺史)라 하고, 그 아래의 마을의 우두머리는 백성들이 모두 수령이라 부른다 하였다.
수령은 발해에서 일본에 보낸 사절단의 구성원에 다수가 보인다. 841년의 사절단의 경우, 뱃사공을 제외한 77명 중 62명이 수령이라는 직함을 띠고 있었다. 이들 수령은 주로 발해의 각 지방에 있던 토착 말갈족 마을의 우두머리로서, 중앙에서 파견한 지방관의 통제하에서 자기 마을의 군사 및 행정에 관한 책무를 맡았던 이들로 여겨진다.
이러한 수령제도는 발해국의 지배층은 고구려인인데 피지배층의 다수가 말갈족이라는 그 주민구성상의 특징과, 그리고 그에 따른 지역간의 발전의 불균등성으로 인하여 공동체적 관계가 강하고 어업·수렵의 비중이 높은 것 등의 각 마을마다의 특성을 고려해서 시행된 발해국의 지배체계의 독특한 일면을 나타낸 것이다. 이 점은 주민구성과 지방지배체계의 이중성이라는 면에서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