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용성(白龍城, 1864~1940)은 3·1운동 당시 불교계에서 한용운(韓龍雲)과 함께 민족대표 33인에 들어간 승려이다. 선종 수행 및 계율 전통을 지키고 불교 경전의 한글 번역에 힘쓰는 한편 대각교(大覺敎)를 건립해 새로운 불교 운동을 펼친 선각자이기도 하였다. 속명은 백상규(白相奎), 법호는 용성, 법명은 진종(震鍾)이며 16세 때 가야산 해인사에서 출가하였고, 의성 고운사(孤雲寺), 양주 보광사(普光寺) 등에서 참선 수행을 하였다. 순천 조계산 송광사에서 『전등록(傳燈錄)』을 보고 깨달음을 얻었고, 지리산, 금강산, 보개산, 북한산 등에서 선 수행을 지도하는 한편 불교 경전을 폭넓게 읽었다. 1907년부터 중국에 가서 2년간 머물렀고 1911년 서울에서 활동하면서 대각사(大覺寺)를 세웠다. 3·1운동으로 투옥되었다가 서울에 삼장역회(三藏譯會)를 만들어 『화엄경』 등 불전의 한글 번역에 전념하였다.
1925년에는 대각교를 창설했고 만주 용정(龍井)에도 대각교당을 건립하고 선농(禪農)일치운동을 펼쳤다. 또한 박한영(朴漢永)과 함께 불교잡지 『불일(佛日)』을 펴냈고 일요학교를 여는 등 불교 현대화와 대중화에 앞장섰다. 이뿐 아니라 도봉산에서 ‘활구참선만일결사회(活句參禪萬日結社會)’를 결성하였고, 승려의 대처를 반대하는 건백서를 총독부에 제출하기도 하였다. 저술로는 『각해일륜(覺海日輪)』, 『귀원정종(歸源正宗)』, 『심조만유론(心造萬有論)』, 『용성선사어록(龍城禪師語錄)』 등이 있다.
신연활자본 1책으로 서울 대각교 중앙본부에서 1936년 발행하였다.
본서의 구성은 본종편, 병을 간택함, 무자화두병, 화두에 의심을 내지 아니하는 병, 화두에 의심을 얻었을지라도 지견에 빠지면 병됨, 심공을 닦는 정로의 6편에 대각교 지취가 부록되어 있고, 문답식으로 서술하였다. 처음 본종편에서는 저자의 수행 경력을 소개했는데, 스스로 의심나는 바를 따라 자신의 근본을 찾았고 생각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의심한 끝에 그 생각이 본래 공(空)하다는 것과 삼라만상 및 마음이 모두 공하여 한 물건도 없음을 깨달았다고 하였다. 또 천수주(千手呪)와 육자주(六字呪)를 병행하여 외운 것과 21세 때 양주 보광사에서 처음 깨친 후 몇 차례에 걸쳐 도를 깨달은 과정을 상세히 기술하였다. 이어 도가 무엇이고 도 닦는 법에는 어떤 것이 있는지, 공부할 때 번뇌와 분별과 망상을 제거하는 법 등을 문답식으로 서술하였다. 또 깨달음을 얻으려면 먼저 진(眞)과 망(妄)을 결택할 것, 무자(無字) 화두(話頭)를 참구할 때의 병, 화두 공부에서 지해(知解)가 가장 큰 병이 됨, 의정(疑情)이 크게 일어날 때마다 화두를 더욱 열심히 들 것 등을 자세히 설명하였다. 이뿐 아니라 『선문보장록(禪門寶藏錄)』에 나오는 진귀조사(眞歸祖師), 주1의 조사선지(祖師禪旨) 등에서 그가 조선 불교의 선풍(禪風)을 계승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근대기에 선종 및 계율 전통을 계승하려 한 백용성의 선 수행론으로 화두 참구와 참선의 방법 및 경계해야 할 점 등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해 놓은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