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박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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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데호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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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념
수수료 및 계약에 의하여 이용자들에게 숙박설비를 제공하는 영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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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수수료 및 계약에 의하여 이용자들에게 숙박설비를 제공하는 영업.
내용

호텔·여관·여인숙 등이 그 대표적인 것으로, 본래의 기능은 장거리여행자에게 숙식을 제공하는 것이었으나, 경제발전과 국민관광산업의 중요성이 커지면서 더욱 발전하였다.

우리 나라의 전통적 숙박시설은 그 기능이 조금씩 다르기는 하였지만, 신라시대에는 ‘역(驛)’이라는 형태로, 고려시대에는 ‘역’·‘객사(客舍)’라는 형태로, 조선시대에는 ‘역’·‘원(院)’·‘여각(旅閣)’ 또는 ‘객주(客主)’라고 불리면서 발전해왔다.

뿐만 아니라 장터를 내왕하는 장사꾼이나 나들이를 하는 서민을 위해 길가나 동네 어귀에서 술과 음식을 팔고 나그네를 유숙시키는 ‘주막’이라는 것도 있었다. 이러한 초기 숙박업에 관한 사서(史書)의 기록을 보면, 신라 문무왕 때 차득공(車得公)이 지방을 여행하면서 지방 이속(吏屬)의 집에서 유숙하였다는 기록이 ≪삼국유사≫ 문무왕조에 보이고 있어, 그 당시에 민박과 같은 형태의 숙박시설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숙박제도에 관해서는 ≪삼국사기≫ 신라본기에 “서방(西方)에 우역(郵驛)을 두고 소사(所司)에 명하여 관도(官道)를 수리하게 하였다.”는 최초의 기록이 있다. 1876년(고종 13) 강화도조약 이후 부산 등 개항장을 중심으로 객주 및 여각들의 동업조직인 객주회 등이 구성되어 조합으로서의 기능을 발휘하였고, 영국·프랑스 등 해외열강의 한국진출이 활발해지자 외국인의 숙박은 물론, 직접 외국상품을 거래하는 무역 등의 상업적 기능까지 담당하였다.

이러한 시기에 서울에는 근대적 여관으로서 추원정(萩園亭) 등 4, 5개가 있었으며 대부분이 남산 기슭에 있었다. 1907년경 서울에 있던 1등급 여관은 성관(城館) 외 12개 소, 2등급 여관은 구주관(九州館) 외 12개 소, 3등급 여관은 구분여관(口分旅館) 외 9개 소 등 32개 소가 산재하고 있었다. 1930년 전후 서울을 중심으로 우리 나라 사람에 의하여 경영되던 100명 이상 수용할 수 있는 여관으로는 제일여관·남선여관(南鮮旅館) 등이 있었다.

근대호텔로는 1888년에 외국인을 대상으로 한 인천의 대불(大拂)호텔이 최초의 것으로 알려지고 있으며, 서울에 제일 먼저 세워진 양식 호텔은 1902년 독일인 손탁(Sontag)이 정동에 세운 손탁호텔이며, 1909년에는 프랑스인의 소유였던 하남(何南)호텔이 역시 정동에 세워졌다. 1914년에 조선호텔이 생기고 1936년에는 서구식 형태의 반도호텔이 세워져, 우리 나라 호텔산업의 전환기를 가져왔다고 볼 수 있다.

민영호텔로는 1952년 대원호텔, 1957년 사보이호텔 등이 개관되었다. 또, 1963년에는 워커힐호텔이 당시 동양 최대의 휴양지 호텔로 문을 열었다. 1970년대에는 정부의 국민관광진흥책에 따라 관광산업의 발전과 함께 각종 숙박시설이 확충되어왔으며 고급화 추세로 발전되어왔다.

한편, 정부에서는 1961년 12월 <숙박업법>을 제정하여 호텔·여관·여인숙·하숙영업을 허가사항으로 하였고, 1981년 4월에는 법을 개정하여 하숙영업을 삭제하여 자유영업으로 하도록 하였다.

우리 나라의 숙박업은 1960년대 이후 경제발전에 따른 국민소득의 증대와 함께 많은 발전을 하였지만, 선진국에 비해서는 규모나 서비스면에서 영세성과 후진성을 면하지 못하였다.

그러나 1986년 서울아시아경기대회와 1988년 서울올림픽대회 등의 대규모 국제행사에 힘입어 1980년대 이후부터는 괄목할만한 향상과 발전을 이룩하였다.

1997년 12월 말 현재 관광호텔은 481개 소, 일반호텔 409개 소 총 890개 소로서 1996년의 849개 소에 비하면 1년에 41개 소나 증가한 셈이며 1980년의 140개 소에 비하면 무려 6배 이상이 증가하고, 1984년의 334개 소에 비하여도 15년 사이에 2.6배 이상이 증가한 것이다. 이를 지역별로 보면 서울이 172개 소로 전체의 약 19.3%, 부산이 85개 소로 전체의 약 9.5%로서 대도시에 편중되어 있는 실정이다.

여관은 갑류 여관 8,215개 소, 을류 여관 1만 4497개 소로 총 22,712개 소로서 1996년 2만 1632개 소에 비하면 1년에 1,080개 소가 증가한 셈이다. 지역별 분포를 보면 서울이 3,471개 소로서 약 15%를 부산이 2,104개 소로서 약 9.2%로 서울·부산이 전체의 약 4분의 1을 차지하여 도시집중 현상을 알 수 있다. 여인숙은 1997년 말 현재 8,071개 소로 1996년의 8,656개 소 보다 585개 소가 감소하였으며, 1984년 1만 3969개 소에 비하면 5,898개 소가 감소한 것이다.

고급화와 생활수준 향상에서 온 추세로 보여진다. 콘도미니엄은 74개 소로 1996년의 59개 소에 비하면 1년 사이에 15개 소가 증가하였다. 호텔이나 여관과는 달리 콘도미니엄은 도시집중이 아닌 지방인 강원도 집중현상을 알 수 있다. 74개 소 중 36개 소가 강원도에 집중되어 있어 약 48.6%로 반을 차지하고 있다. 다음은 경기도에 10개 소가 있다.

1997년 말 현재 농원여관 36개 소를 합하여 숙박업 총수는 3만 1783개 소이다. 이 중 서울이 4,708개 소로 전국의 약 14.8%를 차지하고있다.

참고문헌

『한국관광발전사』(한국관광협회, 1984)
『보건사회부통계연보』(보건사회부, 1985)
『한국경제연감』(전국경제인연합회, 1997)
『보건복지통계연보』(보건복지부, 1997)
『주요행정통계』(보건복지부, 1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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