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단 바탕에 채색했으며, 크기는 세로 419.5㎝, 가로 254.2㎝이다. 일본 사가현[佐賀縣] 가라쓰시[唐津市] 가가미진자[鏡神社]에 소장되어 있다. 현재 작품 어디에도 화기가 남아있지 않다. 다만, 1812년 9월에 이노다다타카[伊能忠敬]가 작성한 『측량일기(測量日記)』에 '보물양류관음상일폭 장일장팔척횡구척 일매화견화성지대삼년오월일 원주왕숙비 화사내반종사김우문한화직대조이계동임순동송연색원외중랑최승등사인(寶物楊柳觀音像一幅 長一丈八尺橫九尺 一枚畵絹畵成至大三年五月日 願主王叔妃 畵師內班從事金祐文翰畵直待詔李桂同林順同宋連色員外中郞崔昇等四人)'이라는 내용이 있다.
즉, 이 그림은 한 장의 화견(畵絹)에 그려졌으며, 1310년(충선왕 2)에 왕과 숙비(叔妃)의 발원으로 내반종사(內班從事) 김우(金祐), 문한서(文翰署)의 화직(畵直) 대조(待詔) 이계(李桂) 등 총 9인이 참여해 완성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화면 아래에 먹으로 쓴 기록이 있는데, 이를 통해 1391년(공양왕 3)에 일본 승려 양각(良覺)이 가가미진자에 봉납했음을 알 수 있다. 1391년에 이미 일본에 반출되어 있었음을 확인시켜 주는 내용이다.
관음보살이 왼쪽 측면을 향하여 반가한 자세로 앉아 있으며, 왼손 앞쪽에는 버드나무 가지가 꽂힌 정병이, 그 아래 구석에는 입상의 선재동자(善財童子)가, 그리고 관음보살의 등 뒤에는 대나무가 표현되어 있다. 이러한 화면 구성요소는 고려시대 다른 수월관음도와 대체로 일치하나, 향하고 있는 방향은 통례와는 정반대라는 점이 특이하다. 관음보살의 몸 부분에는 금니(金泥)를 칠했고, 치마는 붉은 바탕에 흰색으로 주1을 전면에 그려 넣었다. 투명하게 표현된 베일은 백색 바탕에 구름과 봉황을 금니로 그려 넣었다. 베일은 질감을 느낄 수 있을 만큼 세련되면서도 실재감 있게 표현되었다. 입체감 넘치는 바위의 묘사도 뛰어나다.
이 그림은 고려 불화 최대의 화폭, 그에 어울리는 각 모티프의 정확한 형상, 문양의 배치, 색의 조화가 거의 완벽하다고 할 수 있을 만큼 완성도가 높은 그림이다. 고려 불화, 더 나아가 동아시아 불교 도상의 대표작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