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6년 당시 함경남도 함흥군 운전면 본궁리에서 김쌍돌이 무녀가 구송한 것을 손진태(孫晋泰)가 채록하여 『조선신가유편(朝鮮神歌遺篇)』에 수록하였다. 자손이 병이 났을 때 구연하는 무가인데, 이 무가의 주인공인 형제신은 자손의 병을 관장하는 신격(神格)으로 보인다. 무가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숙영선비와 앵련각시가 혼인을 하여 행복하게 사는데 사십이 넘도록 슬하에 자손이 없었다. 이를 서로 한탄하다가 경상도에 사는 점쟁이에게 문복을 하여, 복술이 지시하는 대로 안애산 금상절에서 100일 동안 기도 정성을 드렸다. 그 뒤 태기가 있어 아들을 낳았는데 장님이었다.
부부는 한탄을 하며 아이 이름을 ‘거북이’라고 짓고 유모에게 맡긴 뒤, 다시 태기가 있어 둘째 아들을 낳았다. 그런데 이번 아이는 곱사등이에 앉은뱅이였다. 부부는 이 아이를 ‘남생이’라고 이름을 짓고 역시 유모에게 주어 기르게 하였다.
거북이와 남생이는 부모가 죽은 뒤 많은 재물을 모두 없애고 가난뱅이가 되어 빌어먹다가, 거북이가 남생이를 업고 안애산 금상절을 찾아갔다. 절 어귀의 연당에 금덩이가 떠 있는 것을 발견한 형제는 그 금을 건져 부처를 도금하고 절을 치장하였다. 그러자 부처의 힘으로 거북이의 눈이 밝아지고 남생이의 등과 다리가 펴지게 되었다. 그 뒤 두 형제는 조선으로 나와 81세까지 살다가 죽어 혼수성인의 신이 되었다.
이 무가는 잉태를 못하는 부부가 부처에게 치성을 드린 뒤 잉태하여 아들 형제를 둘 수 있었고, 불구자인 아이들이 부처에게 공양하여 병을 고쳤다는 내용으로서 부처의 영험을 강조하고 있다. 함흥 지역 이외에 다른 지역에서는 채록되지 않은 자료로서, 무속 고유의 신화라기보다는 불교의 변문(變文)으로 형성된 설화가 무가로 이입된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