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조선의 시조인 기자(箕子)를 추모하기 위하여 위패를 모시고 춘추로 향사하는 전각이다. 평양에서 가장 오래된 건축물로서 1325년(충숙왕 12)에 처음 세운 뒤 여러 차례 보수를 거쳐 오늘까지 전해지고 있다.
이 건물은 임진왜란과 6·25 때 피해를 입었으나 보수되었으며, 현 숭인전은 1977년에 길 건너편에서 숭령전(崇靈殿) 옆으로 옮겨놓은 것이다. 정면 3칸(12.97m), 측면 3칸(8. 72m)에 안팎 3포(三包)의 포식두공(包式枓栱)을 얹고, 겹처마 합각지붕에 모루단청[毛老丹靑 : 부재의 끝 부분에만 그린 단청]을 한 아름다운 건물이다.
기단은 잘 다듬은 화강석의 긴 댓돌을 정연하게 쌓았고, 기둥은 배흘림기둥으로 전면의 가운뎃칸을 좌우의 측면칸보다 넓게 하였다. 네 모서리의 기둥은 가운데 기둥보다 8㎝ 밖으로 내세워 안쪽 대각선방향으로 약간 기울게 하였다.
양 옆의 기둥들은 밖으로 나가면서 일정한 비례로 차츰 높여 가운데 기둥에 비하여 12㎝나 더 높게 하였다. 따라서 기둥 위에 얹은 액방(額枋)과 평방(平枋)의 양 끝이 살짝 들렸다.
이것은 건물이 기울어져 보이는 것을 바로잡기 위한 방법으로 건물 전체의 균형을 돋보이게 하고 있다. 두공은 제공(諸貢)과 첨차(檐遮)를 짧게 하고, 각 부재가 단순한 직선과 간단한 면으로 되어 있어 소박하고 은은한 느낌을 준다.
이와 함께 서까래와 덧서까래, 추녀와 덧추녀들이 매우 정연하고 규칙적으로 배열되어 있다. 지붕 네 모서리에는 마치 부채살을 펴놓은 듯 부채살 서까래 12개를 아름답게 대었다. 지붕 용마루의 높이는 집채에 알맞게 정하고 지붕마루와 지붕면들이 완만한 곡선을 이루고 있다. 이 건물은 고려시대의 건축술을 보여주는 점에서 건축사연구에 좋은 자료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