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60년(철종 11) 정시(庭試)에 작자의 동생인 세익(世翊)이 급제하자, 철종은 세익에게 한림(翰林)을 제수하였다. 그러나 안동김씨측이 반대하자 세보가 그들의 횡포를 논하였다. 이에 그는 안동김씨측의 탄핵을 받아 전라도 강진현 신지도(薪智島)로 귀양을 갔다.
이러한 귀양의 경위와 귀양생활 등을 국문으로 기록한 것이 『신도일록』이다. 돌아올 기약도 없는 유배를 가면서 강진 신지도에 도착할 때까지의 행적과 또 신지도에 도착하여 금부도사와 강진현감에 의하여 위리안치(圍籬安置)가 집행되는 과정 등을 자세하게 기록하였다.
이 일기에는 그가 유배생활을 한 2년 여의 생활만을 기록하였는데, 그동안 겪은 쓰라린 곤욕과 외로운 자신의 심정을 담았다. 이 책 후단에는 95수의 시조를 싣고 있는데, 작자의 시조집 『풍아(風雅)』와 중복되지 않은 시조작품은 12수가 된다.
이 일기는 특성 있는 유배문학작품으로 조선 후기를 산 작자의 사상과 관념 및 현실을 직시할 줄 알았던 작자의 고뇌가 잘 표현되어 있어서 기록문학적인 면에서도 그 의의가 크다. 즉, 『신도일록』은 전시대 일기문학의 전통인 자기 독백적 어조의 활용, 내면 심리와 감정의 섬세한 표현 등을 계승하여, 김약행(金若行)의 『적소일기』, 유진(柳袗)의 『임진록』 등의 국문일기와 구별되는 점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