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 충신 죽죽비

  • 역사
  • 유적
  • 조선 후기
  • 시도문화유산
경상남도 합천군 합천읍에 있는 조선후기에 건립된 신라의 충신 죽죽 관련 기념비.
시도문화유산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권덕영 (한국교원대학교, 한국사)
  • 최종수정 2024년 07월 09일
합천 신라충신 죽죽비 비각 미디어 정보

합천 신라충신 죽죽비 비각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의

경상남도 합천군 합천읍에 있는 조선후기에 건립된 신라의 충신 죽죽 관련 기념비.

내용

1974년 경상남도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1기. 백제가 신라의 대야성(大耶城: 지금의 합천)을 침공하였을 때 이에 대항하여 끝까지 싸우다 죽은 죽죽의 공적을 기념하기 위하여 세운 비석이다.

죽죽은 신라의 대야주 사람으로 아버지는 찬간(撰干) 학열(郝熱)이다. 신라 선덕왕 11년(642)에 사지(舍知)로서 대야성 도독 김품석(金品釋)의 휘하에 있던 중, 백제 장군 윤충(允忠)의 공격을 받고 김품석 부처(夫妻)가 죽는 등 성이 함락될 위기에 처하였으나 항복하지 않고 동료인 사지 용석(龍石)과 함께 끝까지 싸우다 장렬하게 전사하여 왕으로부터 급찬(級湌)의 관등이 추증되었다.

그후 1644년(인조 22)에 죽죽의 충절을 기리기 위하여 당시의 합천군수였던 조희인(曹希仁)이 죽죽이 백제군을 맞아 싸웠던 지금의 자리에 이 비석과 비각을 세웠다. 화강암으로 된 이 비석은 높이가 약 1.4m, 폭 54㎝, 두께 약 19㎝ 크기인데, 비문은 진양(晉陽) 사람 강대수(姜大遂)가 지었다.

비각(碑閣)의 현판에는 ‘新羅忠臣竹竹之碑(신라충신죽죽지비)’라 적혀 있는데, 이 비각은 1935년에 이준호(李駿浩) 등이 중수하였다. 그리고 1970년에 합천청년회의소에서 석축과 비각의 하단 왼쪽에 찬양단비(讚揚短碑)를 세웠다.

참고문헌

  • - 『삼국사기(三國史記)』

  • - 『조선금석총람(朝鮮金石總覽)』하(1919)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콘텐츠 이용 안내

콘텐츠 수정 요청

필수 입력 항목입니다.

주제
0 / 500자
근거 자료
첨부된 파일이 없습니다
파일선택

최대 5개, 전체 용량 30Mb 첨부 가능

작성 완료되었습니다.

작성글 확인

다운로드가 완료되었습니다.

다운로드할 미디어를 선택해주세요.

모든 필수 항목을 입력해주세요.

다운로드할 미디어가 선택되지 않았습니다.

다운로드 중 오류가 발생했습니다.

미디어 다운로드

  • 이용 목적을 상세히 작성하여 주세요.
    서비스 개선에 반영하도록 하겠습니다.

출처 표기 : [사진명]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필수 입력 항목입니다.

이용목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