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주 신륵사 보제존자 석종비
천리마 [리] 가리말 [리]
부수 馬 총획 29
나라 이름 [주] 섬 [주]
부수 巛 총획 6
하느님 [신] 천신 [신]
부수 示 총획 10
굴레 [륵] 재갈 [륵]
부수 力 총획 11
절 [사] 마을 [사] 내관 [시]
부수 寸 총획 6
넓다 [보] 두루 [보]
부수 日 총획 12
물 이름 [제]
부수 水 총획 17
높이다 [존] 중히 여기다 [존] 술 [준]
부수 寸 총획 12
놈 [자]
부수 老 총획 10
경쇠 [석] 단단하다 [석]
부수 石 총획 5
종 [종] 쇠북 [종]
부수 金 총획 20
비석에 쓰이는 문체 [비] 돌을 세우다 [비]
부수 石 총획 13
- 예술·체육
- 유적
- 국가문화유산
- 명칭 여주 신륵사 보제존자석종비 (驪州 神勒寺 普濟尊者石鍾碑)
- 분류기록유산/서각류/금석각류/비
- 소재지 경기도 여주시 신륵사길 73 (천송동, 신륵사) / (지번)경기 여주시 천송동 산113-1
- 웹페이지https://www.heritage.go.kr/heri/cul/culSelectDetail.do?ccbaCpno=1123102290000
- 위도37.298374928832
- 종목 보물(1963년 01월 21일 지정)
- 지정기관국가유산청
- 집필 1995년
- 김세호 (서예가)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여주 신륵사 보제존자석종비 정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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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경기도 여주시 신륵사에 있는 고려후기 에 건립된 보제존자 혜근의 탑비.
내용
비신은 대리석으로 양옆에 화강암기둥을 세워 보강하고, 그 위에 목조건물의 공포와 기왓골을 조각한 옥개석을 얹었다. 신라시대 이래로 귀부와 이수를 갖춘 일반화된 석비 형식이 고려 말기에는 대석과 옥개석으로 변형되기 시작하는데, 바로 이 비가 고려 말기의 석비 형식을 잘 보여준다.
보제존자 혜근은 선교양종의 통합운동을 통해 불교 재건에 힘쓰던 명승으로, 1376년(우왕 2) 새로운 유교세력과의 미묘한 정세로 양주 회암사(檜巖寺) 주지로 있다가 왕명에 따라 밀양 영원사(塋原寺)로 가던 중 신륵사에서 입적하자 그의 문도들이 그의 사리를 안치한 석종과 석종비를 세웠다.
비문은 당대의 문장가인 이색(李穡)이 짓고 명서가인 한수(韓脩)가 썼다. 글씨는 자경(字徑) 2㎝ 정도의 해서로 넉넉한 짜임새와 부드러운 필획이면서 흐트러짐이 없다.
참고문헌
- 『대동금석서(大東金石書)』
- 『해동금석원(海東金石苑)』
- 『조선금석총람(朝鮮金石總覽)』 상
- 『경기금석대관』(경기도, 19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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