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한산 신복선사

  • 종교·철학
  • 유적
  • 고려 후기
경기도 광주시 남한산(南漢山)에 있었던 고려후기 제25대 충렬왕 당시 중건된 사찰.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김위석 (전 경북대학교, 철학)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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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경기도 광주시 남한산(南漢山)에 있었던 고려후기 제25대 충렬왕 당시 중건된 사찰.

내용

절이 있었던 자세한 위치는 미상이다. 이곡(李穀)이 쓴 중수기에 의하면, 이 절의 창건연대는 미상이나 주변 마을이 생겼을 때부터 있었다고 하며, 그 뒤 여러 차례 폐허가 되었다고 한다.

고려 충렬왕 때 동지민장총관부사(同知民匠摠管府事) 박군(朴君)의 아버지가 사재를 희사하여 폐허화된 절을 중건한 뒤 임금의 복과 아들의 출세를 위해서 기도하였다. 그 뒤 박군은 아버지의 지극한 사랑을 기리기 위해서 이 절을 중수하였다.

공사는 1314년(충숙왕 1)에 시작하여 10년 동안 계속하였으며, 공사감독은 영구(永丘)가 맡았다. 이 때 법당과 요사채·산문·회랑 등을 모두 갖추었다.

절이 완공되자 박군은 좋은 땅 15결(結)을 시주하였고 부인 김씨는 금속화폐 500관(貫)을 시주하여 공양과 향화(香華)를 위한 재산으로 충당하였다. 이때부터 이 절은 선승(禪僧)들의 수도처로 쓰였으나, 그 뒤의 역사는 미상이며, 조선 중기까지는 존립하였다.

참고문헌

  • - 『하남지역 불교유적에 대한 연구』(황보경, 『고문화』56, 2000)

  • - 『한국불교사찰사전』(이정, 불교시대사, 1996)

  • - 『동문선(東文選)』

  • -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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