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불교 ()

불교
문헌
일제강점기, 『불교』지의 속간(續刊)으로 1937년 3월에 창간하여 1944년 12월까지 경남3본산회의(제1집~제30집)와 조계종 총본산 태고사(제31집~제67집)에서 발행한 불교 잡지.
문헌/연속간행물
창간 연도
1937년 3월
종간 연도
1944년 12월
간행자
불교사(佛敎社)
총호수
67
내용 요약

『신불교(新佛敎)』는 『불교』지(1924.7.~1933.7. 발행)의 속간(續刊)으로 1937년 3월에 제1집 이후 1944년 12월 67집까지 발행된 불교 잡지이다. 초기에는 범어사·통도사·해인사의 경남3본산회의에서 발행하였고, 허영호(許永鎬)가 편집을, 한용운이 고문을 담당하였다. 허영호가 마지막으로 발행한 19집 이후에 1939년에 1년간 일시 휴간되었다. 1940년 1월에 속간되었고, 1941년 10월호인 31집부터는 조계종 총본산 태고사의 기관지로 발행이 전환되었다.

정의
일제강점기, 『불교』지의 속간(續刊)으로 1937년 3월에 창간하여 1944년 12월까지 경남3본산회의(제1집~제30집)와 조계종 총본산 태고사(제31집~제67집)에서 발행한 불교 잡지.
편찬과 간행 경위

『신불교(新佛敎)』는 1937년 3월 창간호부터 30집(1941.9.)까지는 범어사 · 통도사 · 주1의 경남3본산회의에서 발행하였고, 31집(1941.12.)부터 종간호 67집(1944.12.)까지는 조계종 총본산 태고사에서 발행한 잡지다. 잡지의 발행소는 모두 불교사(佛敎社)로 현재 조계사의 주소지이다.

권상로한용운이 1924년부터 1933년까지 발행한 『불교』지(통권 108호)의 복간을 표방한 잡지이며, 표제도 ‘불교’이다. 『불교』지와는 구분하기 위해 호수를 ‘신제(新第)○집(輯)’으로 주5하고 있다. 『신불교』의 창간호부터 19집(1939.1.)까지는 허영호(許永鎬)가 발행을 주관하였고, 1939년에 약 1년간 잠시 휴간되었다가 20집(1940.1.) 이후는 김삼도(金三道), 임석진(林錫珍) 등이 발행하였다.

구성과 내용

초기 주요 필진은 허영호가 주축이 되고 불교청년운동을 함께 한 한용운과 강유문이었다. 한용운은 폐간된 『불교』지의 발행인으로서 주6된 『신불교』의 등장에 큰 기대를 표명하였으며, 당시 불교계 현안과 개혁 방안을 모색하는 논설과 세계 불교계 동향 등을 연재하였다. 문학 작품으로 심우장의 시와 소설 『철혈미인』 등을 발표하였다. 허영호와 강유문은 일본 대정대학 동문으로, 강유문은 졸업 논문인 「신돈고」와 주2의 심우장을 방문하고 지은 시조와 여러 주제의 수필을 발표하였다. 허영호는 「교단의 미래를 전망하면서」와 「조선불교의 입교론, 본존론, 불성론」 등 교단의 지향점과 조선 불교의 정체성을 교리적으로 탐구하는 논설 등을 발표하였다.

의의 및 평가

『신불교』의 특징 중 하나는 「능단금강반야바라밀경주석」, 「십이문론」, 「대승기신론」, 「천태사교의」 등의 경전과 논서의 우리말 번역과 「보살사상의 기원과 발달」, 「심해탈에 대해서」, 「원시불교에서 아와 무아」 등의 서구 논문을 번역해 수록했다는 점이다. 이처럼 『신불교』는 총본산운동을 견인하는 역할뿐만 아니라 경전과 학술 논문을 번역 소개함으로써 불교를 대중화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

그러나 19집에 「황국신민의 서(誓)」와 「황실의 어번영(御繁榮)을 축함」과 같은 글들이 실리고, 이후 1년간 휴간되는 등 『신불교』의 편찬 방향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20집에 「내선일체(內鮮一體)와 불교도」가 수록되고, 특히 대동아 주8 1주년 기념호로 간행된 43집(1942.12.)에 「대동아 전쟁 일지」가 수록되는 등 『신불교』는 초기에 조선 불교를 담론하는 문화 잡지로서의 생명력은 퇴색하고 대동아 주4주3의 논리를 홍보하는 제도권 기관지로 퇴색하고 말았다.

참고문헌

원전

강석주·박경훈, 『불교근세백년(佛敎近世百年)』(중앙일보사출판국, 1980)

단행본

김종진, 『근대불교잡지의 문화사』(소명출판, 2022)

기타 자료

김종진, 「『불교』지의 복간을 표방한 잡지: 『신불교』」(『고경』 111, 성철사상연구원, 2022)
주석
주1

경상남도 합천군 가야면 치인리 가야산에 있는 절. 신라 애장왕 3년(802)에 순응, 이정 두 대사가 세웠다. 수다라전(修多羅殿), 법보전(法寶殿)에 8만 1258매의 대장경 경판을 소장하고 있다. 지금의 건물은 조선 후기에 중건한 것이다. 현재 대한 불교 조계종 제12교구 본사로 되어 있다. 우리말샘

주2

‘한용운’의 법호. 우리말샘

주3

일본과 조선은 한 몸이라는 뜻으로, 일제 강점기 때 일본이 조선인의 정신을 말살하고 조선을 착취하기 위하여 만들어 낸 구호. 우리말샘

주4

일본을 중심으로 함께 번영할 동아시아의 여러 민족과 그 거주 범위. 태평양 전쟁 당시 일본이 아시아 대륙에 대한 침략을 합리화하기 위하여 내건 정치 표어이다. 우리말샘

주5

분명히 밝히어 적음. 우리말샘

주6

간행을 중단하였던 신문이나 잡지 따위를 다시 계속하여 간행함. 우리말샘

주7

얼마간의 도움이 됨. 또는 그 도움. 우리말샘

주8

‘태평양 전쟁’을 당시 일본에서 이르던 말. 우리말샘

• 본 항목의 내용은 관계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단,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미디어ID
저작권
촬영지
주제어
사진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