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상로 ()

불교
인물
일제강점기 때, 문경 대승사 주지, 불교조계종원로회 원장, 불교사상사 사장 등을 역임한 불교학자 · 친일반민족행위자.
이칭
이칭
퇴경(退耕), 사불산인(四佛山人), 안토 소로우(安東相老)
인물/근현대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879년(고종 16) 2월 28일
사망 연도
1965년 4월 19일
출생지
경상북도 문경
•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내용 요약

권상로는 일제강점기 문경 대승사 주지, 불교조계종원로회 원장, 불교사상사 사장 등을 역임한 불교인이다. 퇴경(退耕), 사불산인(四佛山人), 안토 소로우(安東相老)라고도 한다. 1879년에 출생하여 1965년에 사망했다. 중앙불교전문학교(후에 동국대학교) 교수로 재직하였다. 「종교계의 임전체제」, 「대동아전쟁과 대승불교」, 「전시의 전 책임을 맡으라」 등 일제에 협력하는 글을 썼다. 저서에 『조선불교약사』, 『삼국유사역강』 등이 있다. 2004년 일제강점하 반민족행위 진상규명에 관한 특별법에 따라 친일반민족행위자로 규정되었다.

목차
정의
일제강점기 때, 문경 대승사 주지, 불교조계종원로회 원장, 불교사상사 사장 등을 역임한 불교학자 · 친일반민족행위자.
생애 및 활동사항

1879년 경상북도 문경에서 출생했다. 어려서 한학을 공부하고, 18세 때인 1896년 출가해 문경 김룡사(金龍寺)에서 서진(瑞眞)을 스승으로 승려가 되었으며, 이회광(李晦光)에게 구족계(具足戒)를 받았다. 이후 김룡사 불교전문강원에서 사집과(四集科) · 사교과(四敎科) · 대교과(大敎科)를 이수하는 등 불교학을 연구했으며, 24살이던 1903년 영안선사(永安禪師)로부터 인가를 받아 김룡사에서 강석(講席)을 개설했다. 1906년 서울로 상경해 불교계 최초의 신식학교인 명진학교(明進學校)에 입학했으나 3개월 후 자퇴했다. 이후 강원도 고성군에 있는 건봉사(乾鳳寺)에서 설립한 봉명학교(鳳鳴學校) 운영에 관여하였고, 김룡사 경흥학교(慶興學校)와 성의학교(聖義學校) 강사를 역임했다. 이회광의 주도로 불교계 대표들이 모여 창설된 종단인 원종(圓宗)에서 1909년 종무 편집부장으로 활동했다.

1911년 문경 대승사(大乘寺)의 주지가 되었다. 1912년 조선불교월보사 편집인 겸 발행인으로 취임해 『조선불교월보』를 발행했으며, 1917년 9월 불교시찰단원으로 일본을 시찰했다. 1918∼1922년 김룡사 경흥학교와 상주 보광학교 강사를 거쳐 1924∼1931년 불교사 사장으로 취임해 잡지 『불교』를 발간했다. 1931∼1944년에는 중앙불교전문학교(1940년 혜화전문학교로 변경, 1946년 동국대학으로 승격) 교수로 재직했다. 1935년부터 조선총독부에서 전개하던 심전개발운동에 연사와 필자로 참여했다. 1937년 5월 중앙기독교청년회관 강당에서 ‘시국 각성의 필요성’, 같은 해 8월 부민관 강당에서 열린 시국강연회에서 ‘선각자로서’라는 제목으로 강연했고, 1939년 국민정신총동원조선연맹의 참사가 되었다. 『매일신보』에 1940년 9월 6일자부터 3회에 걸쳐 「종교계의 임전체제」라는 글을 연재했으며, 같은 해 10월 국민정신총동원조선연맹이 개편한 국민총력조선연맹의 참사를 맡았다. 1941년 10월 조선임전보국단 발기인으로도 참여했다. 조선불교조계종 총본사 태고사 종무원 교학편수 상임위원을 맡기도 했다. 1942년 1월 잡지 『불교』에 「대동아전쟁과 대승불교」라는 글을 발표했고, 같은 해 11월에는 같은 잡지에 「전시의 전 책임을 맡으라」라는 글을 게재했다. 1943년 10월 「육군특별지원병 임시채용규칙」이 공포되자, 11월 국민총력조선연맹에서 주최한 임시특별지원병에 관한 좌담회에 참가하고 1944년 11월에는 국민총력경기도연맹에서 주최한 종교봉사 국민총진격 강연회에 연사로 참여했다.

해방 후인 1946년 4월 동국대학교 교수로 취임했고, 1949년 5월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에 체포됐으나 기소유예처분을 받았다. 1952년 동국대학교 학장을 거쳐 1953년 2월 초대 총장직을 맡았다. 1955년 국사편찬위원회 위원을 지냈으며, 1962년 동국대학교에서 명예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같은 해 8월 대한민국 문화포장을 받았다. 이외에도 불교포교사시험 검정위원, 불교법계고시위원회 위원장, 불교법규 위원, 불교성전 편찬위원, 문교부 국정교과서 교사위원(校査委員), 대한고서간행회 국역위원, 대한종교신도연맹 고문, 신라가야문화연구소 위원, 우리말팔만대장경편수위원회 위원장, 중앙불교연구원 원장, 동국역경원 역경위원, 불교조계종원로회 원장, 현대불교사 사장, 불교사상사 사장 등을 역임했다.

1965년 4월 19일 사망했다. 입적한 뒤 조계종에서 대종사(大宗師)의 법계를 받았다. 『조선불교약사(朝鮮佛敎略史)』와 『조선불교사개설(朝鮮佛敎史槪說)』 · 『삼국유사역강(三國遺事譯講)』 등의 저술이 있으며, 한국의 불교 관련 사료를 집대성해 『고려사불교초존(高麗史佛敎抄存)』 · 『이조실록불교초존(李朝實錄佛敎抄存)』 · 『한국불교사료(韓國佛敎史料)』 · 『한국사찰전서(韓國寺刹全書)』 · 『한국지명연혁고(韓國地名沿革考)』 등을 편찬했다.

권상로의 이상과 같은 활동은 「일제강점하 반민족행위 진상규명에 관한 특별법」 제2조 제11 · 13 · 17호에 해당하는 친일반민족행위로 규정되어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 보고서』 Ⅳ-1: 친일반민족행위자 결정이유서(pp.565∼600)에 관련 행적이 상세하게 채록되었다.

참고문헌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 보고서』Ⅳ-1: 친일반민족행위자 결정이유서(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현대문화사, 2009)
『친일인명사전』1(민족문제연구소, 2009)
『친일파 99인』(반민족문제연구소, 1993)
「권상로와 삼국유사」(고운기, 『한국불교사연구』5, 2014)
「퇴경 권상로의 삶과 생각」(조혜룡, 『문학·사학·철학』14, 2008)
「권상로 불교학의 근대적 성격」(이재헌, 『불교학연구』4, 2002)
관련 미디어 (4)
집필자
김희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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