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광순

  • 정치·법제
  • 인물
  • 대한제국기
  • 현대
일제강점기 때, 일본 척무성 사무관 등을 역임하였으며, 해방 이후 제 4·5대 민의원 등을 역임한 정치인·친일반민족행위자.
인물/근현대 인물
  • 사망 연도1990년 3월 19일
  • 성별남성
  • 출생 연도1909년 2월 16일
  • 출생지평안북도 선천
집필 및 수정
  • 집필 2012년
  • 김희만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의

일제강점기 때, 일본 척무성 사무관 등을 역임하였으며, 해방 이후 제 4·5대 민의원 등을 역임한 정치인·친일반민족행위자.

생애 및 활동사항

1909년 평안북도 선천에서 출생했다. 1931년 일본 도쿄제국대학 법학부를 졸업하고 이듬해 고등문관시험 행정과에 합격해 1934년 강원 평강군수, 1936년 함경남도 경찰부 보안과장(경시), 1937년 일본 중앙관서인 척무성 식산국 사무관, 1940년 조선총독부 학무국 사회교육과장, 1940년 전시 최대의 관변 통제기구인 국민총력조선연맹 참사, 1943년 강원도 내무부장, 1944년 평안북도 내무부장과 조선근로동원원호회 평안북도지부 이사 등을 지냈다.

해방 후 계창무역주식회사 사장 등 재계에서 활동하다가 1958년 제4대 민의원 선거, 1960년 제5대 민의원 선거에서 민주당 소속으로 춘천에서 당선했다. 1960년 12월 대한펜싱협회 회장을 거쳐 1963년 2월 민주당 재건 때 발기인으로 참여하여 당기위원장을 맡았다. 1965년 11월민주당 비례대표로 제6대 전국구 국회의원직을 승계 받았다. 1972년 한국제포사(韓國製鞄社) 사장을 거쳐 이듬해 회장이 되었다. 1990년 3월 19일 사망했다.

계광순의 이상과 같은 활동은 「일제강점하 반민족행위 진상규명에 관한 특별법」 제2조 제17·19호에 해당하는 친일반민족행위로 규정되어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 보고서』 Ⅳ-1: 친일반민족행위자 결정이유서(pp.195∼227)에 관련 행적이 상세하게 채록되었다.

참고문헌

  • -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 보고서』Ⅳ-1: 친일반민족행위자 결정이유서(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현대문화사, 2009)

  • - 『친일인명사전』(민족문제연구소, 2009)

  • - 『역대국회의원총람(歷代國會議員總覽)』(한국국회인물사편찬회, 1983)

  • - 『일제침략과 친일파』(임종국, 청사, 1982)

  • - 『대한민국정당사(大韓民國政黨史)』(중앙선거관리위원회, 1968)

  • - 『대한체육회사(大韓體育會史)』(대한체육회, 1965)

  • - 『조선총독부급소속관서직원록(朝鮮總督府及所屬官署職員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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