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9년 평안북도 선천에서 출생했다. 1931년 일본 도쿄제국대학 법학부를 졸업하고 이듬해 고등문관시험 행정과에 합격해 1934년 강원 평강군수, 1936년 함경남도 경찰부 보안과장(경시), 1937년 일본 중앙관서인 척무성 식산국 사무관, 1940년 조선총독부 학무국 사회교육과장, 1940년 전시 최대의 관변 통제기구인 국민총력조선연맹 참사, 1943년 강원도 내무부장, 1944년 평안북도 내무부장과 조선근로동원원호회 평안북도지부 이사 등을 지냈다.
해방 후 계창무역주식회사 사장 등 재계에서 활동하다가 1958년 제4대 민의원 선거, 1960년 제5대 민의원 선거에서 민주당 소속으로 춘천에서 당선했다. 1960년 12월 대한펜싱협회 회장을 거쳐 1963년 2월 민주당 재건 때 발기인으로 참여하여 당기위원장을 맡았다. 1965년 11월민주당 비례대표로 제6대 전국구 국회의원직을 승계 받았다. 1972년 한국제포사(韓國製鞄社) 사장을 거쳐 이듬해 회장이 되었다. 1990년 3월 19일 사망했다.
계광순의 이상과 같은 활동은 「일제강점하 반민족행위 진상규명에 관한 특별법」 제2조 제17·19호에 해당하는 친일반민족행위로 규정되어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 보고서』 Ⅳ-1: 친일반민족행위자 결정이유서(pp.195∼227)에 관련 행적이 상세하게 채록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