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성 신중원 ( )

목차
불교
유적
북한 황해북도 개성시에 있었던 고려전기 제1대 태조가 창건한 사찰.
•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통해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목차
정의
북한 황해북도 개성시에 있었던 고려전기 제1대 태조가 창건한 사찰.
내용

924년(태조 7)에 외제석원(外帝釋院)과 함께 고려 태조가 창건하였다. 그 뒤 왕실의 기도도량으로 존립하였으며, 몽고족의 침략이 있기 전까지는 뚜렷한 역사를 지니면서 존립되어왔다.

1086년(선종 3) 11월에는 팔관회(八關會)를 개설한 뒤 왕이 이 절에 행차하였고, 1099년(숙종 4)·1101년·1102년 정월에는 숙종이 이 절에 행차하여 나한재를 베풀기도 하였다.

특히, 예종은 매년 정월에 이 절에 들러서 기도를 올렸는데 1109년(예종 4) 4월 10일 재추(宰樞) 및 6상서(六尙書) 이상이 쌀 2석씩을 내어서 재를 베풀고 싸움의 승리를 기원하였고, 1113년예종이 병으로 누웠을 때는 모든 신하들이 이 절에서 쾌유를 비는 기도법회를 올리기도 하였다.

인종 또한 매년 정월이면 이 절에 행차하여 기도를 드렸으며, 1173년(명종 3) 4월에는 재추가 이 절에서 기우제를 올렸다. 1175년에는 명종이 행차하였고, 1176년 정월에도 분향하였으며, 1178년에는 친히 재를 베풀기도 하였다.

1203년(신종 6)에는 신종이, 1222년(고종 9)에는 고종이 행차하였다. 그러나 1222년 이후의 기록이 보이지 않는 것으로 보아 이 절은 몽고족의 침입 때 폐허화된 뒤 다시 복원되지 못한 것으로 추정된다.

참고문헌

『고려사(高麗史)』
집필자
김위석
    • 항목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단,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미디어ID
    저작권
    촬영지
    주제어
    사진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