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명 신복동(申卜童). 호는 금헌(琴軒). 전라북도(현, 전북특별자치도) 익산 출신.
9세 때 박생순(朴生順)에게 양금(洋琴)을, 12세 때에는 박학순(朴學順)에게 가야금(정악 · 산조)을 배웠고, 13세 때에 정일동(鄭一東)에게 거문고로 민간풍류를 배웠다. 16세 되던 해에 거문고산조의 창시자인 백낙준(白樂俊) 문하에 입문하여 산조를 처음으로 배웠다.
백낙준가락을 이수한 후 고향인 익산에서 고창으로 거처를 옮겨 산조음악에 전념하고 있을 때, 당시의 명창 임방울(林芳蔚) · 이화중선(李花仲仙) 등의 권유로 전북 부안군 줄포면 소재의 줄포가설무대에서 처음으로 거문고산조를 연주하였다.
그뒤 목포의 목포극장에서 명창 이동백(李東伯) · 정정렬(丁貞烈) · 박녹주(朴綠珠)와 공연하였고, 1933년 5월 10일에 후진양성과 창극운동의 전개를 목적으로 창립된 조선성악연구회에 가입하여 많은 연주활동을 하였다.
그가 활동한 무대는 서울의 부민관(府民館) · 단성사(團成社) · 동양극장 · 조선극장, 평안북도 평양의 금천대좌(金千代座), 함경남도의 함흥극장 등이었다.
그의 문하에서 배출된 제자로는 황오익(黃伍翼) · 강성재(姜成在) · 김병두(金兵斗) · 양기평(梁基平) · 조위민(曺偉敏) · 김기환(金基煥) · 김영제(金泳帝) · 윤경순(尹京順) · 정옥자(鄭玉子) · 구윤국(具潤國) · 김무길(金武吉) · 성기군(成基君) · 이창홍(李昌弘) · 이세환(李世煥) · 김효순(金孝順) · 김영욱(金永旭) 등을 들 수 있다.
거문고산조를 융성하게 한 공이 크며 1967년 중요무형문화재(현, 국가무형유산) 거문고산조 예능보유자(1967.7.16.∼1977.11.29.)로 지정받았다. 거문고산조의 음반이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