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중기에 그려진 작자미상의 계회도(契會圖).
개설
내용
1622년(광해군 14) 정인준의 아들 정탁(鄭濯)이 서울에서 이대기에게 계축(契軸)을 보내 같은 해 9월 그 내용을 묵서로 적게 된 것이다. 따라서 계회도의 제작연대는 그 이전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이들은 세 번째 모임을 불과 20일 남기고 홍순각과 이대기가 타처로 가게 되어 더 이상 모임을 지속하지 못하였다.
17세기 초에 제작되었으나 화면 구성과 구도, 그리고 배경의 산수에 비해 인물은 작게 나타내는 등 16세기 전반의 계회도 전통을 견지하고 있다. 화면 중앙에 계회의 주인공인 3인과 좌우 2명이 자리하고, 더불어 시중드는 인물까지 그려 넣어 모두 9명이 등장한다. 산세 처리 기법이나 수목 표현에 있어 조선 중기 안견파(安堅派) 화풍의 여운이 짙다.
의의와 평가
참고문헌
- 『동산문화재지정보고서』1990지정편(문화재관리국, 1991)
- 「신해생갑회지도」(이원복, 『미술자료』39, 국립중앙박물관, 1987)
- 「16세기중엽 계회도를 통해 본 조선왕조 회화 양식의 변천」(안휘준, 『미술자료』18, 국립중앙박물관, 19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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