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평산(平山). 자는 사현(士賢), 호는 직당(直堂). 아버지는 신만균(申萬均)이며, 어머니는 함평이씨(咸平李氏)로 이설서(李卨緖)의 딸이다. 1876년(고종 13)에 외종조 이직서(李稷緖)에게 수학(受學)을 시작하고, 1881년에 곽정현(郭鼎鉉)에게 수학하였다. 뒤에 박세화(朴世和)를 사사하였다.
1895년 국모가 시해되자 의병을 일으키려다가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1905년에 스승 박세화가 을사늑약(乙巳勒約)에 분개하여 거의(擧義)하였다가 적에게 잡혀 투옥되자 동문인 이수영(李守榮)과 함께 달려가 목숨을 걸고 의분(義憤)의 글을 써서 일본을 크게 꾸짖었다.
결국 그 일로 적에게 구금되어 대구에서 옥고를 치렀다. 1910년 8월 박세화가 순절한 뒤 여주 대포산(大布山) 아래에서 강도(講道)에 전념하며 많은 후진을 배출하였다. 경전과 이기설에 정진하였고, 량치차오[梁啓超]의 논설이 유교정신에 위배된다고 하여 통렬히 비판하였다.
또한, 예문에 조예가 깊어 「학례유범(學禮遺範)」을 저작하였다. 음성 충룡사(忠龍祠)와 청풍 병산영당(屛山影堂)에 배향되었다. 저서로는 『직당집(直堂集)』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