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후기에, 종부시정, 응교, 집의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4년간 고향에 은거하였다. 1641년 교리(校理)로 등용되어 종부시정·응교(應敎)·집의·사인(舍人) 등을 역임하였다. 언관재임 때에는 곧은 신하로 이름을 떨쳤고, 병자호란 때에는 절의를 지켰다. 서장관으로 심양(瀋陽)에 다녀와서 1644년 사간에 올랐다.
심기원(沈器遠)의 모역옥사에 친척으로 연루, 장흥에 유배되었다. 여러 신하들의 신원(伸寃: 억울한 죄를 회복시킴)이 있었으나 십여 년간 금고상태로 있다가 효종 초에 석방, 현종 때 신원되었다. 시종 서인의 입장에 섰으나 언론활동은 공정하였다. 시문을 좋아하여 『청봉집』을 남겼다.
참고문헌
- 『인조실록(仁祖實錄)』
- 『효종실록(孝宗實錄)』
- 『오탄집(吾灘集)』
- 『국조인물고(國朝人物考)』
- 『국조방목(國朝榜目)』
- 『송자대전(宋子大全)』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