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동구

  • 역사
  • 인물
  • 조선 후기
조선 후기에, 종부시정, 응교, 집의 등을 역임한 문신.
이칭
  • 문징(文徵)
  • 청봉(晴峰)
인물/전통 인물
  • 관련 사건병자호란
  • 본관청송(靑松)
  • 사망 연도1660년(현종 즉위년)
  • 성별남성
  • 주요 관직종부시정|응교|집의
  • 출생 연도1594년(선조 27)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이수건 (영남대학교, 한국사)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의

조선 후기에, 종부시정, 응교, 집의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청송(靑松). 자는 문징(文徵), 호는 청봉(晴峰). 개국공신 심덕부(沈德符)의 후손이며, 첨정 심자(沈磁)의 증손이다. 할아버지는 목사 심우정(沈友正)이고, 아버지는 판서 심집(沈諿)이며, 어머니는 직제학 홍종록(洪宗綠)의 딸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615년(광해군 7) 진사가 되고, 1624년(인조 2)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일찍이 당대의 문신 이호민(李好閔)과 오억령(吳億齡)으로부터 인정을 받았다. 인조 초 집의(執義)로 재직할 때 소북(小北) 남이공(南以恭)이 청서(淸西)의 영수인 김상헌(金尙憲)을 탄핵하려 하자, 남이공의 부당함을 상소하고 사직하였다.

4년간 고향에 은거하였다. 1641년 교리(校理)로 등용되어 종부시정·응교(應敎)·집의·사인(舍人) 등을 역임하였다. 언관재임 때에는 곧은 신하로 이름을 떨쳤고, 병자호란 때에는 절의를 지켰다. 서장관으로 심양(瀋陽)에 다녀와서 1644년 사간에 올랐다.

심기원(沈器遠)의 모역옥사에 친척으로 연루, 장흥에 유배되었다. 여러 신하들의 신원(伸寃: 억울한 죄를 회복시킴)이 있었으나 십여 년간 금고상태로 있다가 효종 초에 석방, 현종 때 신원되었다. 시종 서인의 입장에 섰으나 언론활동은 공정하였다. 시문을 좋아하여 『청봉집』을 남겼다.

참고문헌

  • - 『인조실록(仁祖實錄)』

  • - 『효종실록(孝宗實錄)』

  • - 『오탄집(吾灘集)』

  • - 『국조인물고(國朝人物考)』

  • - 『국조방목(國朝榜目)』

  • - 『송자대전(宋子大全)』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콘텐츠 이용 안내

콘텐츠 수정 요청

필수 입력 항목입니다.

주제
0 / 500자
근거 자료
첨부된 파일이 없습니다
파일선택

최대 5개, 전체 용량 30Mb 첨부 가능

작성 완료되었습니다.

작성글 확인

다운로드가 완료되었습니다.

다운로드할 미디어를 선택해주세요.

모든 필수 항목을 입력해주세요.

다운로드할 미디어가 선택되지 않았습니다.

다운로드 중 오류가 발생했습니다.

미디어 다운로드

  • 이용 목적을 상세히 작성하여 주세요.
    서비스 개선에 반영하도록 하겠습니다.

출처 표기 : [사진명]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필수 입력 항목입니다.

이용목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