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남도 서산 출신. 가야금 이외에 병창으로도 명성을 떨쳤고, 양금과 거문고 풍류 및 해금도 능하였다. 흔히 아버지 심창래(沈昌來)에게 음악을 배운 것으로 전해지고 있으나, 본인이 말한 바에 의하면 열세살부터 음악을 하였는데 제대로 배운 것은 양금 풍류밖에 없고, 그밖에는 모두 스스로 터득하였다고 한다.
특히, 가야금산조의 조율법과 가락은 모두 독자적으로 창안한 것이다. 그의 가야금 조율법은 제1현이 일반적인 조율법보다 완전4도 낮고, 제2현에서 제12현까지는 일반적인 조율법의 제1현에서 제11현까지와 같다. 그는 산조를 연주할 때마다 새로운 가락으로 즉흥연주를 하는 유일한 명인이었다.
저음역에서 시작하여 차츰 고음역으로 고조되는 형식을 즐겨 사용하고, 평조 및 경조의 우람하고 화평한 가락으로 산조에 일대 변풍을 일으켰다. 1950년대 후반부터는 산조의 본청(本淸), 즉 주음을 종전의 ‘징’(제7현)에서 ‘당’(제5현)으로 완전4도 낮게 내려서 연주하였다.
광복 전 일본에서 6회의 레코드취입을 하였고, 1948년 조택원(趙澤元)무용단과 함께 3년간 미국공연을 하였으며, 1960년 국악진흥회로부터 국악공로상을 받고, 1962년 정부로부터 문화포장을 받았다. 한때 국립국악원 국악사도 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