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팔괘 ()

국악
인물
근대, 가야금병창과 가야금산조의 명인.
인물/근현대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882년
사망 연도
미상
출생지
충청북도 청원군 북이면 석정리
주요 작품
새타령, 자진산타령, 토끼화상
•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통해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내용 요약

박팔괘는 근대기 가야금병창과 가야금산조 명인이다. 1900년 전후로 서울에 올라와 단성사를 중심으로 많은 공연을 펼쳤으며, 빅타 유성기음반에 가야금병창 등을 취입하기도 하였다. 경성구파배우조합에 참여하였고, 이후 자신의 이름으로 협률사를 조직하여 공연을 하기도 하였다. 청주를 중심으로 제자를 양성하였다. 독자적 충청제 산조를 형성하여 박상근 가야금산조에 영향을 미쳤다.

정의
근대, 가야금병창과 가야금산조의 명인.
인적사항

1882년 6월 3일 충청북도 청원군 북이면 석정리에서 태어나 충청북도 청주군 북일면 외평리 67번지에서 거주하였다. 1900년 전후로 서울에 진출하여 가야금병창으로 이름을 얻었다. 일제강점기 청주에서 제자들을 지도하면서 간혹 공연에 참여하기도 하다가 1940년 또는 해방 직후에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1928년 풍류랑(風流郞)은 『별건곤(別乾坤)』에 실린 「조선 고악의 변천과 역대 악단의 명인물」이라는 기사에서 가야금의 명인으로 심정순과 더불어 박팔괘를 꼽았다.

주요 활동

박팔괘가 1910년 이전부터 미국 빅타(VICTOR) 유성기음반에 「새타령」, 「자진산타령」, 「토끼화상」 등의 가야금병창을 취입한 것을 보면, 이미 장안의 인기를 얻었던 명인임을 알 수 있다. 1914년 『매일신보(每日申報)』의 「예단일백인(91) 리화(梨花)」에 따르면, 1914년에 박팔괘가 박리화를 데리고 서울로 상경하였다고 하는데, 이는 서울에서 본격적으로 활동하기 위해서였다.

1914년 이후 박팔괘는 단성사를 중심으로 판소리의 이동백, 잡가의 채란과 함께 한 해 동안 공연을 이어 나갔다. 이때 가야금병창 「춘향가」, 「선소리」, 「새타령」, 「성주푸리」, 「만세가」 등을 연주하였다. 1915년에는 조선구파배우조합(朝鮮舊派俳優組合) 평의원으로 시정오년기념조선물산공진회(始政五年紀念朝鮮物産共進會)에 참여하였다. 같은 해 미국 빅타에서 2차로 유성기음반 「단가」를 취입하였다. 이 시기 박팔괘는 함선생 및 채란과 함께 자신의 이름을 건 ‘박팔괘 일행’으로 지방 흥행을 이어 나갔다.

1915년 이후로 몇몇 무대에 오르기는 하였지만, 박팔괘의 공연 활동은 뜸해졌다. 1927년에 조선일보 충주 지국에서 개최한 독자위안가극회에 지동근, 백점봉, 정해시와 함께 무대에 올랐고, 1930년에는 청주에 이동백 일행 협률사가 온 것을 기념하는 동아일보 독자위안명창대회에 참여하였다. 1935년에는 청주에서 진행된 도농촌진흥위원좌담회(道農村振興委員座談會)에 가미된 연예에 청주를 대표하는 예술가로 출연하였다.

서울과 청주 지역에서 제자를 양성하였는데, 서울에서는 이일선(李日善)과 박상근(朴相根), 청주에서는 이창수, 이계순이 학습하였다고 한다. 또 청주 권번(券番)에서 제자를 지도하기도 하였다.

작품 경향

현재 남아 있는 박팔괘의 유성기음반은 모두 가야금병창이다. 그의 가야금병창은 주로 가야금병창제, 즉 석화제로 구성되었다. 한편, 박팔괘의 가야금산조는 현재 전승이 끊어졌지만, 진양, 중모리, 중중모리, 굿거리, 자진모리로 짜여졌다고 한다. 그의 가야금산조는 박상근의 가야금산조 가락에 영향을 주었으며, 독자적인 충청제(忠淸制) 산조 가락을 형성하였다고 볼 수 있다.

참고문헌

단행본

『일제강점기국악활동자료집 2 경성방송국국악방송곡목록』(한국정신문화연구원 편, 민속원, 2000)
장사훈, 『국악개요』(정연사, 1961)

논문

이진원, 「박팔괘의 음악 활동에 대한 재검토: 가야금병창을 중심으로」(『한국악기학』 12, 한국퉁소연구회, 2016)
주보라, 「박팔괘의 가야금병창 연구: ‘백구타령’과 ‘새타령’을 중심으로」(한국예술종합학교 전문사 학위 논문, 2012)
이보형, 「박팔괘의 생애와 예술」(『한국음악사학보』 20, 한국음악사학회, 1998)
백대웅, 「박팔괘」(『한국음악사전』, 대한민국 예술원, 1985)

신문·잡지 기사

『동아일보(東亞日報)』
『매일신보(每日申報)』
『별건곤(別乾坤)』
『조선일보(朝鮮日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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