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전기에, 지평, 정언, 장령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언관을 역임하면서 국방문제의 중요성을 제기하였고, 국가기강의 확립을 위하여 심정(沈貞)을 비롯한 권간들의 횡포를 탄핵하였다. 1530년 대사간이 되어서는 형 심언경과 함께 김안로(金安老)의 등용을 적극 주장, 실현시켰다. 그러나 김안로가 조정에서 실권을 장악하면서 붕당을 조직하고 대옥(大獄)을 일으켜 사림들을 모함하자, 비로소 지난 날 자신의 추천행위를 후회하기에 이르렀다.
특히 김안로가 자신의 외손녀를 동궁비로 삼으려 하자 이를 질책하였고, 이를 계기로 두 사람 사이에 틈이 생겼다. 1536년 이조판서가 되고, 이어서 공조판서를 역임하면서 김안로의 비행을 비판하자 김안로의 미움을 받아 이듬해 함경도관찰사로 좌천되었다.
그러나 곧 김안로와 그 일당이 축출되자, 우참찬에 올랐다. 인종이 즉위하여 대윤(大尹)일파가 집권하면서 향배가 바르지 않다고 탄핵을 받아 관직을 삭탈당하였다. 그 뒤 복관되었으며, 시·서·화에 능하였다. 시호는 문공(文恭)이다.
참고문헌
- 『중종실록(中宗實錄)』
- 『인종실록(仁宗實錄)』
- 『국조방목(國朝榜目)』
- 『국조인물지(國朝人物志)』
- 『한국계행보(韓國系行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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