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의 전주는 전라감영과 진영이 있었으므로 천주교회사에서 전동은 자연 순교지의 하나가 되었으며, 이 성당은 바로 천주교인들이 처형되었던 풍남문(豊南門)이 있던 곳에 있다.
1891년(고종 28) 보두네(Francis Baudounet) 신부가 전주 남문 밖에 집을 매입하고 정착하였다. 그 뒤 1908년 프와넬(Poisnel) 신부의 설계로 성당 건축에 착수하여 1914년에 준공을 보았다. 벽돌로 된 완전한 격식을 갖춘 로마네스크양식의 성당 건물은 서울의 명동성당과 외양상 유사한 점이 많으나 건축양식상으로는 상당한 차이점이 있다.
회색과 적색의 이형(異形) 벽돌을 사용하여 섬세한 모양을 꾸며낸 점은 같으나 반면에 아치의 모양이나 종탑의 양식은 전혀 다르다.
내부 열주(列柱)는 8각의 석주(石柱)로 되어 있으며, 정면 중앙의 종탑부는 12개의 채광창을 돌린 12각형 고상부(鼓狀部) 위에 12각의 총화형(葱花形)으로 된 둥근 지붕을 얹었고, 좌우에는 그보다 약간 작은 8각형의 고상부 위에 8각의 지붕을 얹었다.
두툼한 외부 벽체와 반원아치의 깊숙한 창이 로마네스크양식의 특색을 잘 나타내고 있으며, 고딕양식의 명동성당이 내부 열주 사이를 뾰족한 아치로 연결한 아케이드인 데 반하여, 이 성당은 8각 석주 사이가 반원아치로 연결되어 있다.
초기 천주교 성당 중에서 그 규모가 크고 외관이 뛰어나게 아름답다. 이 성당은 건평 189평에 대지 4,000평이며, 전주 중앙본당이 1956년에 준공되기 전까지는 전주교구 주교좌성당이었다.
1981년에 사적으로 지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