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우정 ()

조선시대사
인물
조선 중기에, 호조좌랑, 예조좌랑, 형조좌랑 등을 역임한 문신.
이칭
원택(元擇)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546년(명종 1)
사망 연도
1599년(선조 32)
본관
청송(靑松)
주요 관직
호조좌랑|예조좌랑|형조좌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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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 중기에, 호조좌랑, 예조좌랑, 형조좌랑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청송(靑松). 자는 원택(元擇). 사인(舍人) 심순문(沈順門)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통례(通禮) 심달원(沈達源)이고, 아버지는 선공감첨정 심자(沈鎡)이다. 어머니는 구사겸(具思謙)의 딸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576년(선조 9) 진사가 되었다. 1583년 별시문과에 장원하고, 전적(典籍)·형조좌랑을 거쳐 지평(持平)·정언(正言), 호조·예조·형조·공조의 좌랑, 전라도도사·해운판관(海運判官) 등을 역임하였다. 1589년 한성부윤 재직 중에 상관에게 미움을 받아 선천군수로 좌천되었다가 신병으로 면직되었다.

1592년 임진왜란 때 도원수 김명원(金命元)의 종사관(從事官)으로 한강·임진강전투에 참가하였다가 패하고, 이천으로 가 왕세자를 만나 필선(弼善)이 되어서 해서지방을 두루 돌며 백성들을 위무(慰撫)하였다. 이어 강원도에 들어가 군대를 모집하였고, 이듬해 진휼랑(賑恤郎)이 되어 한성 백성들의 진휼에 앞장섰다.

그 뒤 군기시정(軍器寺正)·파주목사·사간·헌납(獻納)을 역임하였다. 1597년 정유재란 때는 광주목사(廣州牧使)가 되어 산성을 수축하였다. 이듬해 영남에 있는 명나라 군사의 군량을 조달하는 직책을 맡고 재능을 발휘하여 원활히 수행하였다. 죽은 뒤 여러 번 벼슬이 추증되어 이조판서에까지 이르렀다.

참고문헌

『선조실록(宣祖實錄)』
『국조인물고(國朝人物考)』
『국조방목(國朝榜目)』
『백사집(白沙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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