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청송(靑松). 자는 원택(元擇). 사인(舍人) 심순문(沈順門)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통례(通禮) 심달원(沈達源)이고, 아버지는 선공감첨정 심자(沈鎡)이다. 어머니는 구사겸(具思謙)의 딸이다.
1576년(선조 9) 진사가 되었다. 1583년 별시문과에 장원하고, 전적(典籍)·형조좌랑을 거쳐 지평(持平)·정언(正言), 호조·예조·형조·공조의 좌랑, 전라도도사·해운판관(海運判官) 등을 역임하였다. 1589년 한성부윤 재직 중에 상관에게 미움을 받아 선천군수로 좌천되었다가 신병으로 면직되었다.
1592년 임진왜란 때 도원수 김명원(金命元)의 종사관(從事官)으로 한강·임진강전투에 참가하였다가 패하고, 이천으로 가 왕세자를 만나 필선(弼善)이 되어서 해서지방을 두루 돌며 백성들을 위무(慰撫)하였다. 이어 강원도에 들어가 군대를 모집하였고, 이듬해 진휼랑(賑恤郎)이 되어 한성 백성들의 진휼에 앞장섰다.
그 뒤 군기시정(軍器寺正)·파주목사·사간·헌납(獻納)을 역임하였다. 1597년 정유재란 때는 광주목사(廣州牧使)가 되어 산성을 수축하였다. 이듬해 영남에 있는 명나라 군사의 군량을 조달하는 직책을 맡고 재능을 발휘하여 원활히 수행하였다. 죽은 뒤 여러 번 벼슬이 추증되어 이조판서에까지 이르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