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칠공신회맹록

  • 역사
  • 문헌
  • 조선 후기
1625년 17공신과 그 자손들이 회맹하여 천지산천과 종묘사직에 고하고 연명한 것을 모아 엮은 관찬서.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장필기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십칠공신회맹록 미디어 정보

십칠공신회맹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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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1625년 17공신과 그 자손들이 회맹하여 천지산천과 종묘사직에 고하고 연명한 것을 모아 엮은 관찬서.

내용

1책. 활자본. 녹훈도감(錄勳都監)에서 간행하였다.

17공신은 개국(開國)·정사(定社)·좌명(佐命)·정난(靖難)·좌익(佐翼)·적개(敵愾)·익대(翊戴)·좌리(佐理)·정국(靖國)·정난(定難)·광국(光國)·평난(平難)·호성(扈聖)·선무(宣武)·청난(淸難)·정사(靖社)·진무(振武) 공신 등이다.

책의 내용은 책머리에 17공신회맹문(十七功臣會盟文)이라 하여 제문(祭文)을 짓고 조선국왕 신(臣) 이종(李悰 : 인조), 왕세자 신 왕(搜 : 昭顯世子)이라 서명한 다음에 호성공신 이광정(李光庭)으로부터 시작하여 진무공신 문중룡(文仲龍)까지 총 393인이 연대 서명하고 있다.

이어서 끝에 녹훈도감이 “삽혈(歃血 : 회맹할 때 짐승의 피를 입에 바르는 일) 동맹하여 신에게 제사를 올리고 공훈을 기록하였다. 이 회맹에 참가하지 못한 사람은 회맹록에 기록이 되지 않아 누가 되니, 혹 병이나 상사 등으로 그렇게 된 자는 이 회맹록의 끝에 기록하여 뒷날 그 까닭을 알도록 하는 것이 마땅하다.” 하여 호성공신 이원익(李元翼), 진무공신 정충신(鄭忠信) 등 40인을 그 까닭에 따라 나누어서 기록하고 있다.

이것은 난적을 토멸한 공신을 책록하고 왕권의 공고화와 국가의 기강을 확립하기 위한 맹약의 성격을 띠는 것이기도 하다. 여러 공신록들과 더불어 공신제도 연구의 기본사료로서 가치가 있다. 국립중앙도서관과 국사편찬위원회에 소장되어 있다.

참고문헌

  • - 『인조실록(仁祖實錄)』

  • - 『십공신회맹록(十功臣會盟錄)』

  • - 『십구공신회맹록(十九功臣會盟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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