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갈은 지금의 강원도 북부에서 함경도 남부에 걸쳐 존속했던 동예(東濊)를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아달성은 지금의 강원도 이천군(伊川郡) 안협(安峽)으로 비정된다.
675년 무렵은 나당전쟁(羅唐戰爭)이 치열한 때였다. 신라는 백제의 옛 영토를 차지하고 다시 고구려 부흥세력을 포섭하여 당의 침입에 대항하였으며, 당나라 장군 이근행(李謹行)이 이끄는 거란병과 말갈병이 신라로 침입해왔다. 이 아달성전투는 바로 나당전쟁의 하나이다.
봄에 아달성태수인 급찬(級飡) 한선(漢宣)이 백성들에게 영을 내려서, 모두 성 밖으로 나가 삼[麻]을 심도록 하였다. 말갈의 첩자가 이를 추장에게 보고하였다. 이에 백성들이 모두 성 밖의 밭에서 일할 때 말갈군사가 아달성을 쳐들어가서 노략질하였다.
이 때 성 안에는 노인과 어린이만 있었으며, 성주(城主) 소나(素那)가 분전하였지만 결국 화살에 맞아 전사하였다. 아달성에 침입한 말갈병은 이근행이 거느린 말갈병이 아닌 것 같으며, 나당전쟁의 와중에 강원도지방의 말갈이 한때 신라에 반발한 세력이 아닌가 짐작된다.
그러나 아달성전투의 패배에도 불구하고 이후 18차례에 걸친 크고 작은 전투에서 신라군은 당군(唐軍)을 물리쳐 모두 승리하여 안변의 북방인 덕원까지 북진함으로써 삼국통일의 완수를 한 걸음 전진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