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야발마(阿離耶跋摩)라고도 한다. 천축국(天竺國)으로 유학하였다. 슬기가 깊어 홀로 깨달아 알았고, 형모는 보통 사람과 달랐다고 한다.
처음에는 불법을 구하기 위하여 중국으로 들어가 스승을 찾아 배웠으며 어느 곳이든 배울만한 스승이 있으면 참례하였다. 또한, 그 뜻도 커서 현세뿐만 아니라 내세의 중생까지 제도하려 하였다.
다시 석가모니의 유적지를 순례하고자 정관연간(正觀年間, 627∼649)에 장안(長安)을 떠나서 오천축국으로 갔다. 파미르고원을 넘어 천축국에 다다른 그는 석가모니불이 교화를 폈던 유적지를 두루 순례하였다.
순례를 마친 뒤 나란타사(那蘭陀寺)에 머무르면서 율장(律藏)과 논장(論藏)에 관한 책을 많이 보아 패엽(貝葉)에 베껴 쓰고 난 뒤 고국에 돌아오고자 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70여세로 나란타사에서 입적하였다. 전기가 『대당서역구법고승전(大唐西域求法高僧傳)』과 『해동고승전(海東高僧傳)』,『삼국유사(三國遺事)』 등에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