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행

  • 종교·철학
  • 인물
  • 고려 후기
고려후기 낙산사 주지를 역임한 승려.
이칭
  • 이칭희현(希玄)
인물/전통 인물
  • 사망 연도1254년(고종 41)
  • 성별남성
  • 주요 관직낙산사 주지
  • 출생 연도미상
  • 출생지미상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김위석 (전 경북대학교, 철학)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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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고려후기 낙산사 주지를 역임한 승려.

내용

속명은 희현(希玄). 고종 때의 낙산사(洛山寺) 주지로서, 1253년(고종 40) 몽고의 침입이 있자 낙산사의 관음보살상과 정취보살상(正趣菩薩像), 보주(寶珠)와 수정염주(水晶念珠)를 양주성(襄州城: 현재의 양양)으로 옮겼다.

이듬해 성이 함락위기에 놓이자 보주와 수정염주를 은합(銀盒)에 넣어 도피하려 하였으나, 사노(寺奴) 걸승(乞升)이 빼앗아 땅에 묻으면서 맹세하기를, “내가 죽으면 두 보주는 다시 인간세상에 나타나지 못할 것이고, 내가 죽지 않으면 두 보주를 나라에 바치겠노라.”고 하였다.

1254년 10월 22일 양주성이 함락되어 아행은 죽었으나 걸승은 죽음을 면하여 적병이 물러간 뒤 두 보주를 파내어 명주도감창사(溟州道監倉使)에게 바쳤다. 그 뒤 이 보주는 각유(覺猷)의 청에 의하여 어부(御府)로 옮겨졌다.

참고문헌

  • - 『삼국유사(三國遺事)』

  • - 『한국(韓國)의 사찰(寺刹) 14-낙산사(洛山寺)-』(한국불교연구원, 일지사, 19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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