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순흥(順興). 조부는 문정공(文貞公) 안축(安軸)이고, 아버지는 문간공(文簡公) 안종원(安宗源)이다. 어머니는 광산김씨(光山金氏) 김휘남(金輝南)의 딸이고, 처부는 청주한씨(淸州韓氏) 한수(韓脩)이다.
조선건국에 공헌하였다. 공양왕(恭讓王) 때에 집의(執義)가 되어 지문하부사(知門下府事) 김사형(金士衡) 등과 상소(上疏)하기를 “윤이(尹彛)·이초(李初)의 무리는 모두 귀양 갔으나 우현보(禹賢寶)·권중화(權仲和)·장하(張夏)·경보(慶補) 등은 아직 수도에 있으니, 이는 죄는 같으나 벌이 다른 것으로 옳지 않은 일입니다. 청컨대 모두 쫓아내소서.”라고 하였다.
그러나 공양왕이 그 정상이 명백하지 않고 일이 사면하기 이전에 있었으므로 허락하지 않고 계속 집무하게 하자 병을 핑계로 출근하지 않았다. 그 결과 우현보 등이 마침내 귀양 가기에 이르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