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에서 무진주의 주리를 역임한 호족.
내용
당시 국제(國制)에는 각 주의 향리(鄕吏) 한 명이 서울인 경주에 와서 제조(諸曹)에 상수(上守)하게 하고 있었는데, 안길도 상수할 차례가 되어 서울에 왔다가 거득공을 만나보게 되고 그 이전의 거득공을 대접한 공(功)으로 왕에게 상을 받게 되었다.
이 때 받은 상을 보면 성부산(星浮山, 혹은 星損乎山) 아래의 땅을 무진주의 상수리(上守吏) 소목전(燒木田)으로 받았고, 또 산 아래의 전(田) 30묘(畝)도 받았다. 이 기사는 지방세력 억제의 의미가 있는 상수리제도에 대한 최초의 기록이다.
물론, 이 제도의 기원은 삼국시대부터일 것으로 여겨지지만 후일 고려시대의 기인제도(其人制度)로 발전하게 된다. 그러나 이 기사가 기인제도의 기원과 관련이 없다는 주장도 있다.
참고문헌
- 『삼국유사(三國遺事)』
- 『성호사설(星湖僿說)』
- 「통일신라(統一新羅) 지배체제(支配體制)의 재정비(再整備)」(김철준, 『한국사』3, 국사편찬위원회, 1978)
- 「고대국가(古代國家) 성장과정(成長過程)에 있어서의 대복속민시책(對服屬民施策)」(한우근, 『역사학보(歷史學報)』12, 1960)
- 「기인(其人)의 성격(性格)에 대한 고찰(考察)」(김철준, 『역사학보(歷史學報)』10, 1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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