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권씨 을사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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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학자 권기가 1605년에 편찬한 안동권씨의 족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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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시대 학자 권기가 1605년에 편찬한 안동권씨의 족보.
내용

끝내 간행되지 않고 초보(草譜) 상태로 내려오다가 현재는 그 보존여부가 미상이다. 권기(1564∼1624)의 서문만 남아 있고 그 초보가 발견되지 않고 있으니 정확한 체제와 구체적인 내용은 알 수 없다.

다만 그 서문과 이 초보의 부계친손(父系親孫)만을 재편집하여 1654년 간행한 갑오보(甲午譜)를 미루어 보아 대강은 짐작할 수 있다. 권기는 시조 권행(權幸)의 23대손으로 자는 사립(士立), 호는 용만(龍巒), 유성룡(柳成龍)의 문인이다.

23세때부터 여러번 향시에는 합격했으나 회시에는 급제하지 못하고 뒤에 참봉에 제수되었다. 전고와 보학에 조예가 깊어 일찍이 스승 유성룡의 지시로 향토 안동부의 읍지인 『영가지(永嘉誌)』 8권 4책을 편찬한 바 있다.

그는 1588년 아버지의 명을 받아 안동권씨족보 편찬에 착수하였으나 권씨전보에는 손을 대지 못하고 다만 그의 9대조의 내외후손계를 내외지파를 가지리 않고 하나의 책으로 편찬하니 권질(卷帙)이 매우 컸다. 그것은 임진왜란때 분실되었다.

수년 뒤 도원수 권율(權慄)이 안동에 내려와 종중의 합의로 편보사업을 권기에게 맡겼다. 지필묵과 인적·물적 자원은 권율과 경상도 도사 권진(權縉)이 주선하고 권행가(權行可)·권중상(權重常)과 함께 편찬에 착수, 각 파계별로 수단(收單)과 탐방 및 자료를 널리 수집하고 또한 관련제가의 족보까지 두루 섭렵하고 수정보완과 교정을 거듭하여 초본을 완성하였는데 소요년수가 8년, 책수로는 16질이었으니 당시까지 안동권씨족보로서는 가장 방대하고 상세한 족보였으나 임란직후라 발간경비 조달이 여의치 않아 끝내 간행을 보지 못하였다.

안동권씨족보의 편간경위를 살펴보면 1476년 발간된 성화보(成化譜)가 최초의 판각간포한 것이며 두 번째 편찬이 1605년 을사년에 권기에 의해 편찬된 이 초보이며 1654년 권우(權堣)에 의해 을사보에 기재된 부계친손을 추려 단권으로 간행한 갑오보가 세 번째였다.

1701년 권유(權愈)가 서문을 쓰고 권태시(權泰時) 등이 경향각파의 파보와 안동향리계열의 별보(別譜)를 합성하여 신사보 13권(원보 11권, 별보 2권)을 간행한 것이 네 번째였다.

권기의 을사보는 조선전기족보의 전형인 성화보의 체제대로 자녀의 기재를 출생순으로 하고 친손과 외손을 동일한 비중으로 등재하였으나 후기 족보와 같이 조상의 생몰년월일·처계·묘소는 기재되지 않았고 관직을 가진 자는 관명만 약기한 것 같다. 이 을사보는 비록 간행되지는 않았으나 뒷날 갑오보(1654)와 신사보(1701) 편찬에 모체가 되었던 것이다.

참고문헌

『안동권씨성화보(安東權氏成化譜)』
『갑오보(甲午譜)』
『신사보(辛巳譜)』
「성화보고(成化譜攷)」(권영대, 『학술원논문집』 20, 1981)
「여말선초 토성리족(土姓吏族)의 성장과 분화-안동권씨(安東權氏)를 중심으로-」(이수건, 『이기백선생고희기념한국사학논총(李基白先生古稀紀念韓國史學論叢)』 上, 19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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