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8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앞면 4칸, 옆면 2칸의 단층건물로, 지붕은 팔작지붕이다. 조선 중종 때에 학자로 활동하였던 서해(徐嶰, 1537∼1559)가 거처하였던 곳이라고 전한다.
건물은 앞면 3칸, 옆면 2칸이 대청이고, 앞면 1칸, 옆면 2칸은 누마루로 배치되었다. 누마루에 붙은 대청은 ‘ㄱ’자로 꺾였는데, 앞면 2칸, 옆면 1칸 규모의 온돌방이 붙어 ‘T’자형 평면을 이루고 있다. 주 건물의 지붕은 팔작지붕이지만, 옆에 붙은 온돌방의 지붕은 맞배지붕으로 되어 있다.
건물은 높이 쌓은 기단(基壇) 위에 자리하고 있다. 주춧돌 위의 기둥은 귀틀을 짜돌리고 그 위에 세운 모습이어서, 전북특별자치도 장수향교(長水鄕校) 명륜당(明倫堂)의 그것과 비슷하다.
건물은 기둥 위에 대접받침처럼 생긴 주두(柱頭)를 놓고서 도리와 장여를 받친 익공이 하나인 초익공(初翼工)의 모습이다. 가구(架構)는 5량(樑)으로, 앞뒤의 평주(平柱)에 대들보[大樑]를 걸고서, 그 위에 공포(栱包)를 짜 맞춘 포작(包作) 모양의 동자기둥을 놓아 종보[宗樑]를 받치게 하였다. 종보 위에는 네모난 접시받침인 소로[小累]와 첨차(檐遮)를 짜넣은 파련대공(波蓮臺工)을 두어 종도리를 받치고 있으며, 종보 위에서 아름답게 휘어진 솟을합장은 쭉 뻗어 종도리를 결구(結構)하고 있다.
누마루와 온돌방 뒤의 툇마루쪽 앞면에는 닭다리 모양의 계자난간(鷄子欄干)을 둘렀고, 대청과 누마루 사이에는 4분합(四分閤)을 달고서 나머지 벽에는 가는 나무인 가시새를 넣어 보강하여 이채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