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7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총 55칸으로 단층의 기와집이다. 현재 건물은 원래의 주택이 임진왜란 때 소실되어 김성일(金誠一)이 재건한 것이다.
이 집이 자리잡은 마을은 풍수지리설에서 말하는 ‘완사명월형국(浣紗明月形局)’으로 삼남사대길지(三南四大吉地)의 하나로 전해오고 있다.
이 집의 평면배치와 구성은 一자형 사랑채와 ㅁ자형의 안채를 행랑채와 연결시킨 특이한 평면형태를 이루고 있다. 중문이 있는 행랑채는 서쪽 끝에서부터 마루ㆍ방ㆍ부엌ㆍ대문ㆍ마구간ㆍ마루ㆍ함실부엌ㆍ방ㆍ마루들이 一자로 되어 있다. 이 행랑채의 문간을 들어서면 동쪽으로는 안채가, 서북쪽으로는 사랑채가 서 있다.
안채는 ㅁ자형 평면으로 부엌ㆍ안방ㆍ대청ㆍ건넌방(윗상방ㆍ아랫상방)들과 헛간 등으로 구성되어 있고 사랑채는 정면 3칸, 측면 2칸의 커다란 사랑대청과 사랑방ㆍ침방으로 구성되어 있다. 사랑채의 구조는 막돌허튼층쌓기를 한 기단 위에 막돌초석을 놓고 네모기둥[方柱]을 세워 굴도리를 받치는 민도리집 양식이다.
가구(架構)는 오량으로 앞뒤의 평주 위에 대들보를 걸고, 이 위에 접시받침만을 놓아 종보를 받치고, 종보 위에는 판대공을 놓아 종도리를 받치고 있다. 처마는 홑처마이며 지붕은 팔작지붕이다.
안채의 구조는 간결한 민도리집양식으로 안방의 전면에는 난간을 두른 툇마루가 있고 툇마루 밑에는 간결한 굴뚝을 내었다. 사당은 사랑채의 서북쪽 높은 언덕 위에 따로 담장을 쌓고 정면 3칸, 측면 2칸의 맞배집으로 건축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