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름은 35.2㎝이고, 높이는 14㎝이다. 한양의 북극고도가 ‘37도 20분’이라고 적혀 있으며, 1일 96각법의 시제에 입각하여 눈금이 그려져 있어, 1654년(효종 5)에서 1713년(숙종 39) 사이에 제작된 것임을 알 수 있다.
이것은 1654년 시헌력(時憲曆)으로 개력한 이후 시제가 1일 96각법으로 변화했고, 1713년 청의 목극등(穆克登)이 조선에 사신으로 올 때 대동한 오관사력(五官司曆) 하국주(何國柱)가 상한의(象限儀)를 이용해 한양의 북극고도를 ‘37도 39분 15초’로 확정하였기 때문이다.( 『국조역상고(國朝曆象考)』 卷1 「북극고도(北極高度)」)
지름이 24.3㎝이고, 한양의 북극고도가 37도 39분 15초라고 기재되어 있어, 1713년 이후에 제작된 것임을 알 수 있다.
청동으로 제작하였으며 흑칠(黑漆)을 하고 은상감(銀象嵌)으로 글씨를 새겨넣었다. 해 그림자를 받는 영침(影針)은 지평환의 정남 위치에서 한양의 북극고도만큼 내려간 지점, 곧 남극에서 정확히 북극을 향하도록 수영면(受影面, 또는 時盤面)에 박혀있다.
수영면에는 영침과 수직으로 그려진 13개의 절기선과 절기선에 수직으로 그려진 시각선이 표시되어 있다. 시각선은 정중앙의 자오선을 오시 정초각 0분으로 해서 좌우에 인시에서 술시까지 낮 동안의 시각을 잴 수 있도록 자오선에 평행한 방향으로 그려져 있다. 절기선은 24절기를 파악할 수 있도록 13개의 선이 시각선에 수직한 방향으로 그려져 있다. 13개의 선 가운데 한 가운데가 춘 · 추분선이고, 맨 위의 선이 동지선, 맨 아래의 선이 하지선이다.
2기의 청동제 앙부일구는 눈금과 글자가 은상감으로 처리되어 있는 등 매우 정교하고 아름다운 자태를 지니고 있어 궁궐에서 사용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세종대에 제작된 앙부일구가 남아 있지 않은 상태에서 앙부일구의 원형을 확인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